2. '틀림'과 '다름'의 경계선

by sajagogumi

성당에는 찰고라고 부르는 단계가 있는데, 세례를 받기 전 치르는 일종의 시험 같은 것이다. 첫째 아이의 시험날, 아이와 함께 신부님 앞에 앉아서 질문을 받았다.

어떤 기도문이 자신있니? 라고 물어보시는 질문에 나의 아이는 당당한 눈빛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다 자신있으니, 아무거나 물어보셔도 된다고.


난 그 순간에 옆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눈빛은 맑았고, 목소리는 또랑또랑 뚜렷하게 울렸다.


그러는 동시에 나는 언제적 저렇게 당당했었지? 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는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똑바로 상대방을 쳐다봤다. 마치 타협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당당하게 자신감을 보였다. 마치 얼마든지 덤벼보라는 것 같았다. 타협할 이유가 없었다. 열심히 해서 다 외워왔으니까.


나의 모습은 어땠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돌이켜보면 늘 타협하고 있었던 것 같다. 크게 죄송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먼저 죄송하다고 말했었다. 내 생각과 다름에도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음이 깔려있었다.


내 의견과 다르면 조율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게 나도 위하고, 상대방도 존중하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해 왔다. 싸우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은 가슴 속 깊이에만 묻어두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협은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의견이 '다름'에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틀림'에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내 생각이 확고하게 상대방의 의견이 '틀림'에 있다고 여겨질 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구분 없이 먼저 타협을 서둘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전에는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말이 옳다고 핏대 세워가며 싸우던 시절이.

언제부터였을까. 아는 것이 모호해지는 경계선은.

내가 내 목소리를 죽이기 시작한 것은.


동물원의 사자 한 종류만 알 때에는 '사자'는 '사자'라고 목청껏 얘기할 수 있었다. '기린'이라는 동물을 배워도 사자와 기린은 너무 명확하게 다르니까 다시 큰소리 칠 수 있었다. 세상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재규어'를 알게되었다. '사자'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럭저럭 구분은 되었다. 그런데, '암사자'와 '재규어'를 보니, 내가 알던 그 사자가 저 사자가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A만 알 때에는 오히려 당당했다. B를 알게 되고, C, D, E, F,,, 괜찮았다.

그런데, A.1을 알게되고 A.2를 배우고, A.A를 알게되면서...

아는 것은 많아지고, 생각의 범위는 확장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계는 흐릿해지고, 내 기준은 모호해졌다.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상대방이 발산하는 기운이 강하면 나의 목소리는 더 침묵했다. 점점 더 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사라져 갔다.


어떻게 하면 나는 내 목소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나의 아이처럼 당당한 눈빛을 빛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외칠 수 있을까.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 답을 얻었던 것 같다.

공부를 지속해야 한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보다 더 깊이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생각도 치고 들어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공부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것'들을 익혀가는 것에만 집중해 왔었다.


'이미 알던 것'을 더 깊이있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알던 것'을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거기에 덧대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아는 것이 확고해진다. 그제서야 비로서 모호해졌던 어떤 경계는 다시 또렷한 형상으로 기준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다시 나는 내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 같다. 당당히, 타협할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속의 공부가 나에게 뚜렷한 기준을 마련해주고, 그것이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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