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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Oct 07. 2016

열한 번째 잔 - 花飛

花飛, 먼 후일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그 나무 아래서

꽃잎을 묻어주는 너를 본다


지상의 마지막 날까지 너는 아름다울 것이다

네가 있는 풍경이 내가 살고 싶은 몸이니까


기운을 내라 그대여

만 평도 백 평도 단 한 뼘의 대지도 소속은 같다

삶이여

먼저 쓰는 묘비를 마저 써야지


잘 놀다 갔다

완전한 연소였다


시인 김선우의 시집 <녹턴> 중 시 <花飛, 먼 후일> 이다.


꽃이 흩날리고 난 먼 후일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꽃잎을 묻는 너. 이미 먼저 흩날리고 가버린 꽃잎을 때마다 묻고 때마다 기억하는 너가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등장하지 않지만 '너'를 보는 화자의 움직임으로 한 편의 시가 그림이 된다.


시를 파헤쳐서 해석 할 힘은 내게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라 하면 3연의 2행 '만 평도 백 평도 단 한 뼘의 대지도 소속은 같다'였다.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았던 것도, 절대 닿을 수 없을만큼 내게서 멀어져 버린 것도 사실은 이 땅에 태어나서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이것보다 더이상 인간다울 수 없는 인간으로 그 모습을 지킨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그렇게 불가능 할 것도 없다. 대지가 우리를 품고 있는 한 우리의 집은 모두가 같으며 우리의 삶은 모두가 그저 그렇다. (적당히 멋지고 적당히 찌질하다는 말이다.)


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땐, 눈 앞의 무언가에 마음을 쫓긴다. 상처입고 아파한 뒤 일어날 생각 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는 스스로 만들어 낸 불필요한 습관들. 그 속에서 우린 상대를 탓하고 사라져버린 꽃잎을 욕하며 위로 받지 못한 것에 마음을 닫는다. 그렇게 먼 후일, 우린 마음을 닫은 채 마음을 나누길 바란다. 욕심의 대가리는 끝도 없이 커간다.


사라지는 것들의 움직임을, 그저 그런 당연한 섭리로 받아들일만한 힘은 내게 도대체 어느정도나 자리잡고 있는가. 나도 그렇게 초연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모든 것에 초연해진다는 것은, 아무런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단순히 흩나려 사라질 꽃(花飛)으로 본다는 것은 그것을 무심하게 받아들일만한 힘이 없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지독하게 아플 자신이 없기에) 모든 의미부여를 거두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애초에 원천봉쇄말이다. 나에게 찾아올 아픔에 대한 연막치기. 미리미리 숨어있기. 그러고선 초연한 척, 쿨한 척 해버리기.


이렇게 저렇게 모자란 것들 사이에서 그 누군가는 초연해지지 않아도, 끝없이 아파해도 다시금 백치미처럼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갖길,

그만큼은 적어도 힘이 있길,


잘 놀다가는 완전한 연소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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