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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Sep 28. 2016

두 번째 잔 - 친구에게

나와 같은 고민을 할 친구에게

 계절은 바뀌는데
오늘도 막연하게 펜대를 쥐고 있겠지. 아니면 술잔을. 맞는건가 아닌건가 수도없이 고민할테고. 잘 사는 건가 아닌건가도 조금 생각할테고. 잠시잠깐의 웃음으로 고민을 외면해보기도 하고 즐겁다고 최면도 걸어보고.

 너에 비해 너의 꿈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큰 꿈에 비해 그 꿈에 네가 들어갈 자리는 너무나 협소해. 아무리 살고 또 살아도, 나이를 먹고 또 먹어도 절대로 생기지 않는 천진난만한 무모함 앞에서 '다들 그러고 살아' 라는 말만 몇 번을 되뇌이는 건지, 근데 말야... 세상물정은 대체 어느나라의 법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잖아.

 N포세대 속에서도 매번 나오는 따끈한 신곡은 삼등급의 음원차트까지 빨아먹고, 약빤 시계는 에너자이저처럼 겁도없이 잘만 가. 잊고있었지? 노래랑 시계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걸.

 그러는 난? 읽어야 할 무수한 책 앞에서 한 번 압도 당하고, 써내야 할 머릿속 지겨운 생각들에 또 한 번 멀미가 나는데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정확히 뭘까? 고집스러운 생각을 또 놓지 못하는 이유는? 머리아프게 사는 게 옳은 것만은 아닌데도 옳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말로 나를 속이고, 달래고, 잘 속았다, 잘 달랬다, 난 바보잖아 하는 이유는 뭘까? 알고싶지도 않으면서 묻는 이유는 또 대체 뭐고.

 시대탓, 환경탓, 배경탓 다 해봐도 결국에 화살은 다시 돌아와 우리한테 꽂히고 아파 할 명분조차 주지 않았던 그날에 우리가 부르짖던 아름다운 꿈은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이뤄야만 꿈이 되는 것을 꾼 것 자체가 천진난만한 무모함이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조금은 용감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기쁘게 살아. 노력하지 않는 나를 예쁘게보기엔 내 자존감은 아직 낮아. 고여있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에 의미부여를 너무 크게 하잖아 우린. 매번 즐거울 필요도, 매번 행복할 권리도 우리에겐 없지만 매번 내 모습을 기뻐 할 의무는 있다고 보니까. 언젠가 말하게 될거야. 그 때 그 날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어제보다 순수한 오늘은 없다고. 세상물정은 그렇게 알아가는 거라고.


 감성적인데다가 이성적인, 생각만 많고 무모한 우리가 언제나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 너를 응원하고 너를 시기할 수 있는 그 날이 온다면 마음껏 시기할 수 있게 해줘. 오그라드는 글이지만 이젠 이런 오그라듬도 철판깔만큼 난 견고해져. 고맙고 또 고마운.

 나와 같은 고민을 할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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