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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Sep 28. 2016

첫 번째 잔 - 인간성의 과시

거짓말, 그 속의 인간성이라는 매력에 대해

인간성의 과시

 종종 사람들은 말을 한다. 난 이게 좋아, 저게 싫어. 난 이래 그리고 저래. 그리고 그 말 속에 자신에게 해가 될 만한 말은 결코 없으며 치부로 보일만한 어떤 것도 절대 없다. 언제부터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움과 멀어진 일이 돼버렸을까. 거짓이 유일하게 통하는 것이 우리의 말이고 반대로 거짓의 감시하의 매력을 뽐낼만한 것도 말이다. 잘 포장된 말 속에 우리는 거짓과 매력 두 가지 모두를 담을 수 있다. 인간성의 과시다. 말을 하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 꾸밀 수 있는 인간.


 밝고 건강한 사람이 좋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내 기준에서 밝고 건강함은 세상을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 타인에게 예의바른 사람, 긍정적인 생각을 주로 하는 사람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으며 그 기준 또한 굉장히 상대적이어서 누군가를 정해놓고 생각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난 완전 반대의 성향이 다분한 사람을 좋아해본 적도 있었다. 생각이라는 게, 말이라는 게 물처럼 얼리면 얼음이 되고 끓이면 공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건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나 또한 건강한 사람, 밝은 사람을 바라는 나는 그만큼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표나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 또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포장해서 말을 하는 과시형 인간이었다.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어떤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사실 이런 질문들에 어색해지기도 한다. ‘난 대체 이상형이 뭐지?’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럼에도 “~한 사람.”과 같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을 해왔던 걸까. 대체 어떤 가장 예쁘고 좋은 단어를 골라야 한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있기나 할까. 예쁘기만 한 것이 사람은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누구도 자기 자신조차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도, 마음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부분이고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경험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더 이상 말로써 자기를 드러낼 필요도, 말로써 한 사람을 단정 지을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누군가 ‘난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말을 한다 해도(기호에 대한 부분은 제외하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할 뿐이다.

 자연스러운 행동과 생각, 편안한 말을 하는 사람이 가장 눈에 띈다. 긍정적인 모습은 말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있는 것이고 건강한 색깔은 단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표정에 있다. 인간성의 과시, 말의 속임수에서 매력과 거짓을 구분해낼 줄 아는 사람이 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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