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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Oct 24. 2016

열아홉 번째 잔 - 우리는 아직 덜 자랐다.

고럼, 고럼.

     

옛날부터 사람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는 걸,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꽤 굳건히 믿고 살았다. 물론 믿음과 행위는 늘 같이 가는 건 아니었다. 역시나 바보처럼 다시 믿기도 하고 다시 기대기도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지만 후폭풍은 모두 내 몫이었고 이런 감정의 널뛰기에 상대를 끌어왔다는 죄책감까지 떠안았던 적도 있었다. 모든 것은 혼자 극복해야하는 일이었고, 깊어진 의심으로 경계를 놓지 않는 삶이 어쩌면 숨처럼 자리 잡았다.

     

보수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생각의 골은 정해져 있었고 행동의 변화는 많지 않았다. 단련하다보면 표정의 다양함마저 잃어가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표현에도 한계가 있었고 ‘정갈’한 것에만 집중을 해왔던 것 같다. ‘항상 정갈하게’, ‘염치와 눈치가 있어야 한다고.’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결국엔 제대로된 인생의 보응을 받는다는 믿음으로 말 몇 마디 던져서 관계가 틀어질바엔 사심을 없애자는 생각으로 버티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정말로 초연해지기도 했다. 욕심 없이, 집착 없이 그냥. 외부적인 것보단 내적인 부분에 엄청난 집중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상황은, 사람은 항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으니까. 힘들어도 그게 나았다.

     

그런데 난 보수적인 사람도, 개방적인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겁은 많은데 무엇에든 호기심이 가득찼고, 소심한데 열정은 있는데로 긁어모을 수 있다. 의지하지 않으려면 따뜻한데 차가운척도 잘 해야했고, 약한데 강한척도 잘해야했다. 무서워도 다가가면서 안 무서운건데 못 다가가기도 한다. 무심한데 애정이 길고, 상처입고도 후회한다. 체면을 생각하면서도 숨막히는 사람은 못견딘다. 오그라드는 면이 많으면서 손발은 펴고 싶어한다. 돈 좋아하면서 글을 좋아한다. 쓰고 보니 여하튼 되게 병맛같다.

     

난 이렇게 양면적인 모습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 욕심이 많았어도 다 떠나갈 것들, 온전히 다 잡지 못할 것들에 대한 아쉬움만 조금 안고서, 경계하며 지내온 세월이 더 많았다. 어김없이 양보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한 행동만 나왔을 뿐이다. 돌아서면 무심할거면서 돌아서기 전엔 사심보다는 어여쁜 배려로 적을 만들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정갈한 인생’이었을까.

     

난 경계를 습관처럼 하는데, 욕심나는 것엔 제멋대로 욕심을 내는데, 눈치와 염치를 말했던 엄마는 요즘들어 내게 편하게 살라고 한다. 난 이미 이게 편한 삶이 돼버렸는데, 엄마는 편하게 살라고 한다. 엄마가 말하는 편한 인생은 어떤 건지, 쉬지 않고 걸어온 내게는 어찌보면 찬바람 같기도 한 말이었다. 엄마는 50평생을 살았고 편하게 살만큼 내일을 알기엔 내가 살아온 26년은 아직 너무 부족한데.




메아리같은 이 밤! 다시 또 새벽감성이 터졌다 다시 글쓰러 돌아가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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