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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Oct 31. 2016

스물 한번째 잔 - 내게 맞는 인생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쩌면 산다는 건

매일, 매번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해가는

답이 없는 시험과 같은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섣불렀을 시절엔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대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을 무시했던 상대,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 내가 반복하는 생각을 인정하지 않았던 누군가. 나를 비웃거나 무시하거나 나에게 무지했던 사람들.

     

내가 어찌해도 날 보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보지 않을 것임에도 말이다.

     

소중하지 않은 것에 소중한 시간을 쏟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문득 문득 그렇게 지냈다. 그러고 연락이 왔다. 내가 하는 일에 본인도 참여할 수 없냐고. 네가 하는 일은 어떠니....? 꼬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씁쓸했다.

     

커보였던 상대가 작아지는 걸 보는 마음은 고소하지 않고 씁쓸하다. 그렇게 가족에게 꼬장꼬장하고 결벽증이 있을만큼 완벽했던 내 조부가 소천할 땐, 다리도 곧게 펴지 못한 채로 화장되는 그 순간 난 왜 그렇게 숙연해졌을까? 이별에 대한 슬픔 때문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숙연해짐에 슬펐었다. 펴지지 않은 다리, 그의 지나간 세월, 영원하지 않았던 품위, 끝까지 지킬 순 없었던 체면. 씁쓸하고도 슬펐다.

     

거들먹거리던 상대가 날 제대로 봐주면 기쁘고 고소할 줄 알았다. 심지어 그 후에 느껴질 희열감을 준비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난 제대로 잘 살고 있으니까, 나에게 맞는 인생은 내 인생이니까, 분명 언젠간 인정받고 배려 받을 걸 믿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바랐던 배려, 관심, 인정의 얼굴은 꽤 씁쓸했다. 물론 모든 것들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 바랐던 기대보단 훨씬 더 물 빠진 색으로 다가온 게 맞다. 타이밍의 장난일 수도 있고,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마다 철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에게 맞는 인생을 조금씩 더 찾아가는 걸 수도 있고.

     

남에게 받는 인정, 누군가의 소중하지 않은 시선. 먹고 또 먹어봤자 배탈만 날 거란 걸 조금은 알아간다. 그리고 후에 찾아온 외부의 모든 것들은 결코 달갑지도 꼬숩지도 않다는 걸. 그것들은 그저 조금은 숙연하고, 안쓰럽고, 그냥 다들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온다는 걸.

     

그리고 난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면 그 뿐.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고 난 밤을 지새우지만 언제나 난 착실하고 견고하게 정답도 없이 내게 맞는 인생을 살아가나보다.

     

어제도 그랬듯 마음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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