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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Mar 23. 2023

하퍼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

이상적인 부모 '애티커스 핀치'

요즘 보는 책이 있다. 하퍼리 작가의 '앵무새 죽이기'다. 예전에 봤던 책인데 다시 읽게 되었다. 어떤 소설이나 인문학 책을 생각하더라도 '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너무 쉬운 언어로 쓰였고 아주 길게 쓰였으며 아이의 시선으로 편견 없이 보는 세상이 좋았고 마음을 울리는 '애티커스 핀치'의 가치관이 인상깊었다. 한낱 소설 속 인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와 같은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은 어른을 만나는 것에 대한 바람이 살짝 든다. 어른다운 어른은 무엇일까. '어른'이란 말로 불려도 느끼하지 않을 사람은 누굴까.


잘못이 있다면 아이에게 솔직히 사과할 줄 아는 부모.

언제든지 아이를 존중할 줄 아는 부모.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부모.

아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부모.

자신의 자녀여도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 부모.

아이의 꿈을 응원하는 부모.

가정의 일원으로 아이를 초대하고 협의할 수 있는 부모.

아이의 고민과 걱정을 같이 연대할 수 있는 부모.

아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부모.

아이가 당한 피해를 외면하지 않는 부모.

아이가 너무 많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부모.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유하는 부모.

세상에 올바르게 서기 위해 독서하고 공부하는 부모.

타인에게 예의를 다 하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부모.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아는 부모.

자신의 노후와 건강을 늘 돌아보는 부모.


부모란 되기 힘든 캐릭터다.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부모의 책임이 요구되는 순간들도 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인지라 정말 가늠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들 말이다.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에서마저 본인의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그러라고 시키진 않지만 아이를 낳았으면 그래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부모에게 지워지는 평생의 단어는 '책임과 노력'이다.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잘 큰 '어른'이 된다. 욕구를 참고 게으름을 견딜 줄 알며 치졸하고 수치스러운 상황도 외면하지 않다보면 반듯한 부모로서의 자격이 생길 거다. 사람은 어릴 때 부모에게 이런 것들을 배우지만 부모가 되어서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통해서도 이런 것을 배우게 된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해 성장하고 부모는 제대로 된 '부모'가 되기 위해 성장한다.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 같지만 이상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눈 앞에 닥친 현실만 급급하여 사는 사람과 출발부터 달라진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을 조금이라도 실현하려 노력 했을 땐 이미 그 격차는 뛰어넘을 수 없을만큼 벌어져있다.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정도의 '책임과 노력'을 감안한 상태여야 한다. 너무나 힘들고 고된일이라 사실은 부모가 되지 않는 길이 훨씬 더 쉬울테지만, 자신들의 욕심으로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대가는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감당하고, 감안하겠다고 다짐하고 낳는 거다. 부모는 원래 힘드니까.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단 한 순간도 힘들지 않을 때가 없을 테니까.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나도 안다. 완전히 공감은 못할테지만.


요즘 나의 부모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크다. 삶이 고돼 저들도 사는 게 정말 힘들겠구나. 평생 어떤 고민거리와 죄책감을 안고 살겠구나.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죄인이 된 것처럼 미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하겠구나. 대체로 잘 지내는 것 같아도 필연적으로 말 못할 부채감과 부끄러움이 얽혀있겠구나.

더 바르게 살지 못한 것,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멋진 어른이 되어주지 못한 것, 더 건강하고 솔직한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사과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 것. 그런 것에 슬퍼할지도 모르겠다. 느낄까. 이런 것들을?

알고야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많은 노력이 드는 일들이기에 조금의 부끄러움을 안고 사는 방향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책임을 다해야 아이도 나중에 부모에게 책임을 다 한다. 부모의 책임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겠지만 자신들이 제대로 어른이 되어 그것을 보고 배울 수 있게끔 지도하는 게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다. 자식은 그런 부모를 보고 배운다. 아이가 커 갈수록 사회에서 부모를 제외한 다른 자극들이 들어오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도 결국 그 뿌리인 부모가 주는 영향이 가장 크다. 그리고 아이들은 언제나 부모의 뿌리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부모여도 살면서 자신의 '뿌리'를 생각한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아동학대 기사가 계속해서 쏟아지는데 이런 세상에서도 제발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반드시 부모가 아니어도 된다. 살면서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제대로 된 어른과 교류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준비를 마치기도 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보장 할 순 없겠지만 아이였을 땐 그만큼 어른의 도움과 힘이 반드시 중요하다는 거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약자가 행복한 세상일수록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는 인식이 든다. 강자는 당연히 행복해지기 쉽다. 행복해지기 쉬운 사람이 아닌 사람이 행복해졌을 때 그 사회는 조금 더 살만한 사회가 되는 게 아닐까. 다시금 학교도 더 생기고 유치원도 더 생기고 여성들이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 없이, 육아에 대한 공포감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희망도 생기지 않을까.


어른이 되는 순간부터,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가 생기는 순간부터 아니 실은 그 전부터 우린 좋은 어른이 되기로 마음 먹어야 한다. 너무 힘들고 고된 과정이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많이 어렵겠지만 책임 질 존재를 만든 사람은 그런 숙제를 늘 안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대가는 늘 마침표 없이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근데 어쩌면 세상에 태어난 거 자체가 벌을 받고 있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은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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