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떠난 모든 유령들

이젠 시끄럽지 않은 곳에서 평온하기를.

by 곰자

시끄러웠어.

사는 게.

소리가 너무 많았어.

밖에서만 들리던 소리가 어느새 내 안에까지 침범했어.

나를 전부 묶어둘 만큼. 도망가지 못하도록.

소리들은 내가 보고 싶을까 봐 붙잡은 건 아니었을 거야.

그냥 내가 자기들의 무리와 달라 보여서 기분이 상했던 거 같아.

그들의 무리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게 자신들을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했나 봐.

그들과 어울릴 수 없는 내 부족함이 유별난 것처럼 보였나 봐.

그게 그들에게 생채기를 냈나 봐.

내 몸짓, 표정 하나하나에 다 기분이 나빴던 거겠지.

난 특별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아질 수도 없었어.

그래도 거듭말하지만 난 특별한 게 아니었어.

그냥 난 나였어.


그냥 시끄러웠던 것뿐이야. 고요해지고 싶어서, 눈에 띄고 싶지 않았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줄이고 줄여서 얇고 곧게 선 나무처럼 살고 싶었어. 그냥 그게 다였어. 누구를 상처 주고 싶지도 않았고 조롱하고 싶지도 않았어. 누군가의 반성의 대상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

근데 굽은 나무들은 그게 영 못마땅했나 봐. 내가 곧게 서려고 한 것이 자신들을 굽어지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됐나 봐. 곧게 서려고 한 것도, 굽은 채 서려고 한 것도 모두 각자의 선택이었을 텐데 말이야.


굽은 나무들은 소리를 잘 내. 눈에도 잘 띄고, 바람이 불면 잎을 더 무성하게 흔들 수도 있지.

난 잎도 없고 가늘고 곧아서 그 많은 소리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나 봐.

굽은 나무들의 소리가 내 속에 비집고 들어오려 하니 그만 몸이 찢어져버릴 거 같았어.

늘어나지도 팽팽하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그대로 망가져버리기 쉬워질 것 같았어.


그래서 누군가 날 도려내주길 바라게 됐나 봐.

몸이 잘리고 불태워지더라도 이곳에서 사라지자고.

몸이 잘리는 고통은 순간이지만 이곳에서 버티며 느껴야 하는 고통은 영원일 것 같아서.


난 이제 그곳에 없어. 몸이 굽은 나무들은 내가 떠나고 며칠간 내 이야기를 했어. 난 그들이 나를 반성의 대상으로 삼길 바란 적이 없었는데, 내가 사라지니 그들이 반성을 하기 시작했어. 지금도 난 그런 걸 바라지 않아. 그냥, 또 다른 몸이 얇은 나무가 나보단 좀 더 스스로를 잘 버텨내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야.


며칠이 더 지나니 몸이 굽은 나무들은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가끔씩 그렇게 얇고 곧았던 나무 하나가 있었지, 그 나무가 참 예뻤는데, 하는 상념만 품을 뿐이었어. 그마저도 그들은 다시 자기 소리를 내느라 길게 이어가진 않았지만.


우린 너무 약해. 너무 약해서 악해지기가 쉬워.

어쩌면 악해지기 위해 약해지길 바라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우린 그다지 약하지 않아. 강해지기도 너무 쉬워.

어쩌면 강해지고 싶어서 악해지길 선택하는 걸지도 몰라.


난 이제 시끄럽지 않아. 난 그냥 유령이 됐을 뿐이야. 그리고 이곳은 너무 고요하고 평온해. 그래도 또 다른 나무가 이곳에 너무 빨리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빨리는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나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