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낭만, 다시 찾을 낭만
낭만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뭘까. ‘낭만’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계속 읊어보았다. 한 다섯 번째 말하고 나니 단어 자체가 어색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무슨 뜻이라고 해석할 수도 없어서 여러 번 말 했는데 오히려 이젠 단어가 주는 느낌까지 잡히지 않는 것 같달까?
이렇게 난 낭만이라는 것을 잘 정의하지 못하고 산다. 그렇게 영화 <라라랜드>를 봤었다. 사실 영화를 본 지는 꽤 됐는데 이제야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게 ‘낭만’이라는 단어를 다시 봤기 때문에. 어찌보면 영화가 줬던 임팩트보다 그것을 보고 난 후에 사람들이 말하는 낭만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라라랜드>는 두 남녀가 주인공이다. 우리가 쉽게 그릴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거기에 낭만적인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꿈의 낭만, 사랑의 낭만, 청춘의 낭만이 모두 섞여있었다. 그리고 낭만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이라는 장르마저 영화 전반에 녹아있었다. 남자의 꿈은 재즈 피아니스트, 여자의 꿈은 연극배우. 둘은 처음엔 서로의 장르에 관해 잘 모른다. 그런데 그 둘의 호감이라는 감정이 서로를 알게한다. 서로를 향해 호의적으로 변하게 하고 결국엔 서로를 응원해주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게끔 한다. 여기서 낭만적인 사랑이 꽃 핀다. 중간 중간 노래와 춤, 악기와 연기가 등장하며 그 둘은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꿈도 꾸고 꿈도 이루고 이별도 한다. 마지막엔 서로가 각자 갈 길을 간 뒤 남자가 운영하는 재즈바에서 우연히 만나 꿈을 이룬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영화는 끝이난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충분했다. 굉장히 단순한 것 같았지만 모호했다. 우린 지금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를 낭만적이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는가? <라라랜드>는 여기에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이런 질문만을 던지는 영화였다. 각자가 자신만의 답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흠뻑 담긴 영화라고 보면 될까.
우린 가끔 길을 잃는다. 우리가 가는 길은 너무나 넓고 깊어서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인지 이정표도 보이지 않고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낭만’처럼 잡을 수 없는 길을 걸을 때가 있다. 아무리 계획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어도 인생의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길을 잃은 채 발길이 닿는대로 가보는 낭만적인 삶을 살지, 그럼에도 꿋꿋이 이정표를 그려넣어서 계획된 삶을 살아갈지는 각자가 선택해야한다. 그런데 우린 꽤 낭만적인 삶을 살 수 있음에도 정확한 이정표를 그려가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우린 낭만을 잃은 만큼 두려움을 챙긴다. 두려움이 낭만을 가로막을 때 쯤 낭만을 선택하기 보단 먹은 겁을 잠재우기 위해서 열심히 이성적으로 살아간다. 돈과 시간, 정답, 다루기 쉬운 대화만을 따르며.
잘 된 인생과 잘못 된 인생은 없다. 낭만이라고 무조건 아름답고 숭고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함부로 답을 내지 않고 질문을 하는 것이다. 적어도 당신은 두려움만큼 낭만을 챙기고 살고있나요? 라고. 인생의 길은 자신의 선택에 달렸지만 낭만을 가진 사람에겐 적어도 그만큼의 개성적인 향기가 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가진 이정표 없음에 대한 혼란만큼 가끔은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낭만도 마음속에 간직해 보는 건 어떨까. 이것 또한 어떤 인생인지 잘 그려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낭만은 잘 그려지지도, 잘 잡히지도 않고 그래서 무섭지만 우리 모두가 동경하듯이 명확한 빛을 내며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이니까. 숨겨뒀던 낭만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잃어버려도 다시 찾을 수 있는 희망이고 용감함이니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서 실패한 사랑,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그만큼의 낭만은 따라야 내가 살아온 과거가 절대 추해지지 않는다는 합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화라 하더라도 빠르고 쉬운 정답만을 찾으며, 성과가 나지 않으면 그 노력은 시간낭비만 한 쓸데없는 짓이라고 단정 짓기엔 우리가 그간 쌓아 온 것들은 언제라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힘이 충분하다. 그래서 인생은 딱 딱 정답이 나오는 시험지가 아니니 망친 시험지를 채점하듯 자책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길까지 오는 동안 힘들었을 자신을 안아 줄 필요도 있고 그 과정 중에 만난 여러 사람과 감정을 존중해 줄 필요도 있다고 본다. 점점 더 이성적으로만 변해가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성과’만이 ‘열매’는 아니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가끔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의 세상 같은 라라랜드 속에서 춤추는 두 남녀의 사랑과 꿈은 내게 이런 답을 내게 하고 사라진 낭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