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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Mar 24. 2017

네 곡 - Antifreeze

검정치마의 예쁜 동화 노래



검정치마 - <antifreeze>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누군가가 그랬다. 난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고 있는 거라고. 다치지 않게, 상처 입지 않게 꽁꽁 싸맬 뿐 정말 나를 믿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게 아니라고. 기쁨이 없어도 슬픔만 못 느끼게 하면 다행인 하루하루를 사는 것. 나를 지키는 삶은 이어진다.
 직장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도 나의 하루는 계속된다. 상대를 알아가고 깊게 소통하려는 생각보단 어느 자리에서든 나를 지키겠다는 본능이 눈을 뜬다. 누구도 날 헤쳐선 안 되고 그 누구 때문에도 상처를 입어선 안 된다. 생각이 깊고 많은, 그래서 예민하고 소심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누구와도 깊게 섞이지 않을 적당한 거리감. 그것뿐이다. 강한 모습은 거리감을 두는 강한 척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착각 속에서 하루를 살기도 했다. 어떤 상대든 나를 헤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는데, 꽁꽁 싸매는 버릇은 대체 왜 모든 사람에게 숨 쉬듯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에 인정하기 싫은 내 연약함의 강도가 누군가에게 뜻밖의 상처를 줄 때엔 또 다시 설명할 수 없는 죄의식으로 가득 찼다. 죄 없이 죄책감만 남는, 가해 없이 가해자가 된 사람과 피해 없이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남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나로 살고 싶은 날들을 줄기차게 겪고 있던 것뿐인데, 그것을 함께해 줄 사람을 찾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욕심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에도 바쁜 시간에, 아니 어쩌면 하루하루 밥 벌어먹고 사는 것에 혈안이 돼도 잘 살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이곳에서 나를 알아봐 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건네는 것 또한 상환 못할 빚이기도 하고 말이다.
 검정치마의 노래처럼, antifreeze처럼, 얼어붙는 것에 끝까지 반항하고 변하지 않을 마음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투쟁을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의 고결함을 노래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당장의 배고픔에 쓰레기통을 뒤질 수 있는 것도 사람일 텐데. 그만큼 감성적이면서도 지독하게 이성적인 존재가 사람일 텐데 가능할까 그것이.
 나에게 쏟을 타인의 여유는 많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아가면서도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람을 바라는 마음은 왜 빚더미처럼 자꾸만 부풀어 가는 건지.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상대에게 바라는 건 왜 이리도 많은지. 나의 행복을 이루기 전에는 세상은 왜 계속 불행한 것처럼 느껴지는지. 왜 아직도 그렇게까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건지.
 오늘, 검정치마의 노래를 들으면서 동화 속 왕궁을 또 하나 만들었다.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아주 예쁜 왕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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