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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Mar 26. 2017

여섯 곡 - 정류장

엄마


패닉 - 정류장



[손잡아주던 그대 잊어버렸지
생각하면 그대 나와 함께였는데
고집을 부리고 다 필요없다고
나 혼자 모든 것들을 감당하려 했었지만
그댈 마주쳤을 때 눈물이 흐를 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됐네
낙엽이 뒹굴고 있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까치발 들고
내 얼굴 찾아 헤매는]



 오래 전 일이었다. 굉장히 몸이 약하고 무게가 나가지 않아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어도 제대로 걷기 힘든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언제 그랬냐는 듯 미련하게 잘 먹는 어른이 됐지만 하여간 그 땐 그랬다.    아홉 살쯤 이었나. 아이였기도 했고 발도 작아서 그날은 엄마의 손에  의지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렸고 바람이 세게 부니 비틀대던 나를 엄마는 등에 업었다. 우산 하나로 엄마는 나를 업고 빗길을 걸었다. 횡단보도에서는 뛰기도 했고 빗물이 튀기도 했다. 그 날, 엄마의 그 등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 내가 기억하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 엄마는 다리가 종종 아프다. 나이가 드니 하나 둘씩 고장이 난다며 시큰 거리는 다리를 주무르기도 한다. 오십년을 넘게 걸어온 다리니 그 발자국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묻어있고 또 묻혀있는지 난 가늠할 수 없다. 그저 나와 언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니 아빠를 만나기 전부터 아니 엄마가 아이였을 때부터 걸어왔을 다리니 아홉 살에 약했던 내 다리와는 다른 우직함이 묻어있을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크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서 알아보려는 노력을 늘 그만두게 된다. 내리사랑은 당연하다는 합리화로 끝맺음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난 이렇게 엄마에게 키워졌는데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도 문득 몇 번 한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슬퍼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난 좋은 딸이 아니다. 욕심도 많고 이기적이고 감정을 크게 쓰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좋은 것을 하면 그만인 삶을 산다. 고마운 마음도 오래 가지 않는다. 자주 먹는 엄마의 밥이, 늘 보는 엄마의 얼굴이 얼만큼 더 익숙해져야 난 좋은 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평생을 날 사랑해온 엄마의 마음보다 며칠 만난 남자친구의 손을 더 따뜻이 감싼다.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시선보다 신세한탄을 위해 전화를 건 친구의 목소리가 더 가엾다. 어딘가에서 길을 잃으면 그 곳 어떤 정류장에든 서있을 것 같은 엄마를 떠나는 연습을 사실 우린 매일 하고 있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가고 점점 더 엄마와 멀어지는 길 위에 선다. 그 길엔 그 날의 횡단보도에서 뛰던 엄마도, 튀었던 빗물도 없다. 그저 뒤에 놓은 엄마를 습관처럼 문득 문득 돌아보며 앞을 향해 갈 뿐이다. 그렇게 습관처럼 안심하며.
 이젠 엄마에게 그 우직했던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시큰거리고 저리기도 하는 얇은 다리만 있다. 앞으로 더 그렇게 되겠지. 이젠 나보다 뒤에 오는 엄마가 끝까지 내가 가는 길 위에 있어주길 바란다. 내가 어디선가 또 길을 잃고 무서운 마음에 두리번거릴 때면 뒤에서 끊임없이 걸어오고 있는 엄마를 볼 수 있길. 천천히.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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