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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Mar 31. 2017

열 곡 - 서쪽 숲, 차라의 숲

이적과 러브홀릭의 숲은 어디였을까



이적-서쪽 숲


[커갈수록 사람들은 말했죠
어디에도 서쪽 숲 같은 건 없단다
너는 여기 두 발을 디딘 곳에
바위틈에 잡초처럼 굳건히 버티며 견뎌야 한단다
오 내 어머니 오 난 가지못했죠
오 난 여기서 언젠가 언덕을 넘어
떠나고 말리라 노래만 부르겠죠]


러브홀릭 - 차라의 숲


[지구 어딘가의 모퉁이 나의 별이 있는 곳
푸른 새벽의 노래처럼 고요한 소원의 길
지친 마음 가득 베인 상처와
시린 눈물 달래줄 그 곳
손을 내밀어준 바람을 따라
달의 날개를 펴 꿈속을 날아가
나의 숲이여 노래를 시작해]
 
 나이가 들면 나를 위로하던 것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질 줄 알았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나가는 어른이 되기에 앞서 무감각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하나 추가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에도 싸여있었다. 어떤 상황에도 의연하고 덤덤하게 그럼에도 똑똑하게 일을 처리해야한다는 책임감에도 싸여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상처 받은 감정은 참아서 뭉개는 것만이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를 돕는 건 오롯이 나였다.
 그런데 오히려 참고 뭉개는 버릇을 키웠던 난,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상처가 곪았고, 참는 것은 아무리 해도 무뎌지지 않았으며 언젠가 사방으로 터지게 되는 날엔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나를 돕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것들이었다.
 내게는 숲이 있었다. 퇴근 하는 길에 보게 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가, 사랑이 끝나고 난 뒤 듣게 되는 노래 한 곡이, 한 해를 마무리한 뒤 친구와 드는 술잔이, 자기 전 조용히 쓰는 핸드폰 메모장 속의 글이 나의 숲이었다. 난 이 숲에서 살아왔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숨 쉬었다.
 오늘, 지하철 안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모습은 다양했지만 표정은 비슷했다. 보통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서 멀뚱히 앞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뿐이었다. 우린 서로 눈을 맞추고 있지 않았고 같은 열차에 앉아 제각기 다른 곳으로 향할 뿐이었다. 간혹 큰 소리가 나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려보곤 했다. 안마패치를 파는 행상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표정없이 등에 붙은 패치만을 바라보았다.  각자 무심했던 사람들도 어떤 소리엔 같은 반응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것이라곤 같은 열차에 탔다는 사실 뿐이었다.
 모두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일까. 쉴 수 있는 곳에서 나온 것일까. 표정 없던 그들에게도 각자의 숲이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도, 친구들과의 가벼운 수다에도, 월급통장에도, 새 다짐을 적은 플래너에도 위로가 있다. 영원하지 않을 것 같아도 영원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사소한 순간은 어쩌면 나무가 무성한 숲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난 숲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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