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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Mar 31. 2017

열한 곡 - 봄날은 간다

육개장 냄새와 국화꽃 향기 사이



김윤아 - 봄날은 간다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버린 한 사람에 대한 추모를 여러 사람이 줄지어 한다. 모두 다 약속이나 한 듯 검정색계열의 옷을 입고. 망자의 가는 길에 꽃 한 송이를 올려준다.
 그만큼 가볍게 가는 것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야 누구도 가늠할 수 없지만 가는 길 만큼은 누구라도 다 아는 듯이 배웅한다. 그리곤 우린 단 몇 발자국을 움직인 후 먹는다. 까만 상복을 입고 바쁘게 반찬을 나르고 열심히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그 중에 어떤 반찬은 몇 번이나 더 가져다 먹는다. 국화꽃과 함께 건네는 명복을 빈다는 말 한 마디를 끝으로 오랜만에 본 사람들끼리 그간의 안부를 세심하게 묻는다. 육개장의 기름진 냄새가 피어오른다. 살아있음에, 우린 아직 기름진 사람이다.
 한 번은 궁금했다. 왜 장례식장엔 국화꽃 향기와 육개장 냄새가 한데 뒤섞이는 지. 삶과 죽음에 어떤 경계가 있는 거라면 그것이 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엉키는 냄새여야 하는지 말이다.
 연기처럼 가볍고 한시적인 게 사람이라 그런 걸까. 오랜시간 이 땅에서 발 딛고 살았어도 한 계절 피었다 지는 꽃처럼 그저 홀연히 사라지는 게 삶인걸까.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잊듯 가슴 아팠던 작별도 사실은 돌고 도는 계절의 한 끝에 있는 통과의례같은 것은 아닐까.   
 허무했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난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은데 내가 떠난 뒤 그들도 각자의 삶을 찾아 비슷한 일상을 다시 살아가겠지. 그저 조금 더 긴 안녕을 하듯 우린 그렇게 서로를 떠나는 연습을 하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기름진 냄새라도 더 남기고 가는 사람이고 싶었다. 한 번을 산다 해도 어떤 향이든 지녔던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그 기억이 왜곡되든 과장되든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기억은 계속됐으면. 지금 난 기름진 사람이다. 주변 사람을 곁에서 보내도 아무렇지 않게 내 일상을 챙기며 살아간다. 그리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해주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내가 기억되길 바라는 욕심을 부린다.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나가도 우린 배고픔에 밥을 먹고 끝도 없이 울 것 같아도 지친 나머지 잠도 든다. 누군가와의 작별을 발판삼아 우린 이 땅을 또 살아가고 사랑하고 사라진다. 국화꽃 향기와 육개장의 기름진 냄새가 뒤섞이는 한 공간에서 나는 아직 기름진 사람이라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만을 느끼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들보다 하루 더 사는 것만큼 그들을 위해 하루만큼은 더 가치 있게 살아주기를. 그렇게 우리는 떠난 사람과 무언의 의미 있는 약속을 하고 사랑가는 것임을 문득 잊지 않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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