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자 Apr 24. 2017

62번 째 잔 - 부끄러움은 당연히 나의 몫


 언제부턴가 부끄러움 없이 사는 것이 이상해졌다.


 많이 알아갈수록 오히려 많이 부족해지는 건 당연한 거지만 부끄러움 없이 그 당연한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난 아직 어렸다. 내 실수가 드러날까봐, 그 후에 오는 부끄러움은 나만의 몫이 될까봐, 나만이 아는 내 치부를 남도 알게 되는 순간이 올까봐.
 자존심이 세서 그런 거라고 설명을 해봐도 사실 좋은 어감이 아니란 건 알고 있어서 그것마저 시원한 해결책으로 인정하며 살진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나를 가지고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경솔함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냥 어릴 때보다 생각은 깊어졌어도 부끄러움은 많아졌고 겁이 늘어났지만 극복해야 할 필요성은 사라졌다. 이게 하루가 갈수록 균형을 잡아가는 내 모습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모르는 분야, 알 필요 없는 정보들, 도움 되지 않는 지식들마저 난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구멍 난 모양으로라도 채워가며 어떤 세팅된 상황이 닥칠 것을 면피하며 근근이 살았다. 사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는 명언처럼 돌아다니는 말들에 위로를 받으면서도 대외적으로 모르는 것과 못하는 것이 많을수록 어떤 부끄러움의 낙인이 찍히는 과정을 밟는 것처럼 아파했다. 부끄러움 앞에선 어떤 위로도 무색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부끄러움 없이 살 수 있을까. 부끄러움이 없는 게 좋은 인생인걸까. 우린 부끄러움 덕분에 다신 실수 하지 않을 방법을 배운다. 만약 내가 그 때의 부끄러움을 피하려고만 해서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만들어진 내 모습을 시전하며 살았다면? 난 인정 할 시기도 놓치고 또 언제고 그 때의 이야기가 나올 건지 전전긍긍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나를 계속 속이며 남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남이 중요하지만 남이 중요하지 않은 길 위에 서있다. 이 말처럼 모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길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난 끝없이 고민할 것 같다. 남이 중요하지만 남이 중요하지 않은 길 위에서. 부끄러운 사람과 부족한 사람 사이에서.

작가의 이전글 61번 째 잔 - 날씨는 비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