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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18. 2017

61번 째 잔 - 날씨는 비옴

비가 와서 그런가 했다. 특별 할 것도, 다를 것도 없는 날인데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생각에 버거워진 머리를 바닥에 웅웅 박고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나은 것일까 하던 생각마저 할 때에도 나는 그저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게 좋은 건지. 아니, 어쩌면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를 내일의 막연한 변화와 기쁨을 난 아직도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 생각했다.

딱히 나쁠 것이 없는 삶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따지자면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큰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었고 이 특별하지 않을 날에 종종 맞이하는 이상스런 기분을 권태라는 틀에 묶어 치부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권태는 지나면 다시 권태가 아닌 것이 돼버리는 것이고, 이런 기분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경청과 적당한 위로나 그것도 아니면 지나친 현실감각으로 중2병 돋게 이따위 기분 느낄 새가 어딨어! 하면서 기계처럼 다시 굴러가기만 해도 외면은 되는 거니까. "그저 내가 약해빠져서, 노력이 그만하지 않아서 생기는 기분일테니까. "로 치부하면 답하지 못할 질문은 없을테니까.

세상은 정말 변하고 있는 게 맞을까. 난 이렇게 내 인생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자주 게을러터져버리는 몸뚱아리로 적당히 합리화하며 살고 후회와 반성의 반복으로 지겨워진 삶을 다시금 성실하게 다잡고 살아가기도 하는데 도대체 왜 이 삶은 끝나지 않을만큼 무섭도록 변하지 않는 건지.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에서 내 노력은 정말 크게 작용 하지 못한다는 걸. 나를 나로 봐주려는 세상의 도움 없이는 내 안에서 완성된 행복이나 자유따윈 그저 언제고 무너져도 이상치 않을 막 써버린 글자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걸. 난 이렇게 한낱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을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나부랭이.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도 특별하지 않았고 그렇게 인간은 특별하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인정하기엔 아팠고 인정하지 않기엔 너무나 당연한 날들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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