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 주고도 혼자가 된 사람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든 염려는 이거였다.
이렇게 쓰면 내가 너무 예민해 보이지 않을까.
사람 관계를 손익 계산하듯 따지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까.
혹시 의리 없고, 차갑고, 마음 좁은 사람처럼 읽히진 않을까.
그래서 나는 늘 한 발쯤 뒤에서 말을 고른다.
솔직해지기보다 무난해지기를 택하고, 불편함을 말하기보다 넘기는 쪽을 택한다.
관계에서는 그게 안전하다고 오래 믿어왔다.
나는 사람 관계에서 늘 먼저였다.
먼저 연락했고, 먼저 약속을 잡았고, 먼저 마음을 꺼냈다. 마음을 준다는 말을 쉽게 쓰는 편은 아닌데, 나는 진짜로 다 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장면에는 늘 내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 나는 원래 혼자인 사람이구나.
그다음 생각은 거의 자동이었다.
그래서 다들 나를 싫어하나 보다.
왜 나는 이렇게 애쓰는데, 사람들은 나를 쉽게 두고 갈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늘 이런 쪽으로 결론을 잘 냈다. 관계가 어긋나면, 이유는 항상 나였다.
이런 패턴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초등학교 때의 나는 눈치를 많이 봤고, 솔직히 말하면 찔찔했다.
친구들이 나랑 멀어질까 봐 늘 불안했고, 그래서 어떻게든 예쁨을 받고 싶어 했다.
착한 척도 많이 했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웃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이중적인 아이였는데, 그땐 그게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건 좋았다. ‘나랑 놀아준다’는 느낌이 좋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너무 오래 있으면 또 불편했다. 이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마음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불편함을 참고, 서운함을 삼키는 연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게.
커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늘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조용해지는 관계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연락했고, 더 자주 마음을 썼다.
매년 안부를 챙기고, 선물을 고르고, 기억하려 애썼다.
지금 와서 보니 다정함 반, 불안함 반이었다.
나는 이미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었고, 상대는 아직 신발을 신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사람 관계에서 아주 솔직한 편은 아니다.
손해 보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걸 말로 꺼내지 못한다.
이건 좀 불공평한 것 같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냉정해 보일까 봐, 의리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냥 꾹 참는다. 관계에서 따지느니 차라리 내가 손해 보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해왔다.
문제는 참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말은 안 하지만 감정은 쌓이고, 그 감정은 결국 행동이나 말투에 묻어난다.
예전처럼 다정하지 않거나, 괜히 한 발 물러선 뉘앙스를 쓰거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분위기는 이미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괜히 하지 않아도 될 자랑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답은 단순하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거다. 나도 잘 살고 있다는 걸, 누군가의 표정에서 보고 싶었던 거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지만, 그때의 나는 꽤 진지했다.
20대와 30대를 지나오며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상처를 받으면서도 계속 사람을 만나러 다녔다는 거다.
상처를 숨기고, 아무 일 없는 척 웃으면서. 요즘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연락이 없는 사람은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 하고, 나에게 마음을 쓰지 않는 관계에는 나도 힘을 조금씩 빼본다. 여전히 쉽지는 않고, 가끔은 씁쓸하다.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들 나를 싫어해서 떠난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나만큼 깊지 않았을 수도 있고, 속도가 달랐을 수도 있다. 나는 사랑을 덜 받은 게 아니라, 늘 한 발 먼저 나가 있었던 건 아닐까. 불은 이미 켜두고, 혼자 예열이 끝나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눈치를 본다.
여전히 솔직해지는 건 어렵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를 미워하면서까지 관계를 붙잡지는 않는다.
혼자인 날이 많아도, 그게 곧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가끔은 진심으로 믿어본다.
그 정도면, 지금의 나는 꽤 괜찮다.
관계에서 늘 먼저였던 사람치고는, 이제 조금은 속도를 조절할 줄 알게 됐으니까.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