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친구 생활백서 #1: 비건은 식생활이 다가 아니다.
내 인생 최초의 비건(Vegan)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생 때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애들이 지겹지 말라고 잠깐 잠깐 끼워넣어준 영미권 문화에 대한 짧은 수업시간이었다. 가죽과 모피에 반대하는 비건과 애호가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그때 삽입되었던 모피 애호가 Joan Rivers의 이미지가 어쩐지 강렬해 아직도 그 사진이 눈 앞에 선명하다. 검정 얼룩이 들어간 하얀 털에 파묻힌 듯한 코트 안에서 내게는 무서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사진은 어쩐지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아이의 마음이란 건 단순해서, 무서운 사진의 모피 애호가는 책에서 그 대립자로 소개된 비건은 괜시리 친근하고 응원하고 싶은 주인공처럼 보여졌다.
무튼 그렇게 수업시간에나 듣는 먼 나라 이야기었던 비건과 채식주의는, 독일에 살면서 종종 만나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의 삶의 일부로 다시 내게 종종 안부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내 삶에 깊이 들어온 이들 가운데는 어떠한 형태의 채식주의도 있지 않았고, 있더라도 유연하게 종종 고기나 생선을 먹곤 하는 형태(플렉시테리언)로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사는 중이었기에 큰 인상과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비나를 만나게 되었다. 비나는 의식주 모두 비건을 실천하는 친구인데, 집도 가깝고 여러 공통점을 찾은 우리는 빠른 속도로 일상을 공유하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말하듯이,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비건이 되기로 한 게 아님에도, 비건인 친구가 내 삶에 깊이 들어올 수록, 그의 인생이 내 인생 더 깊숙하게 번져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영향이 나는 꽤나 즐겁다. 비건을 가까이에 둔 사람들이 모두 즐거이 이 선항 영향력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출처]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비건 친구 생활백서" 시리즈는 비나를 만나고, 내가 비건이 아님에도 바뀐 나의 삶과 알고리즘이 흥미로워서, 그리고 가까운 친구가 비건이면 알면 좋은 정보들이 한국어 검색으로는 잘 나오지 않아서 내가 배워가는 내용들이 아까운 마음에 적어두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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