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1: 채'식'이 다가 아닌 비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글을 시작할까 했지만, 난 친구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백전백승이 목표는 아닌데, 또 적당한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이야기 하려는 비건과 친구가 되어 배운 것들, 터득한 요령들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에서는 여전히 조금 낯설 수도 있는 비건의 개념에 대해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빨리 내 진짜 에피소드들을 풀어나가고 싶지만, 12년제 교육과정에서 받아온 '서문으로 시작하기'의 습관은 버릴 수가 없나보다.
비건(Vegan)은 흔히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완전 채식주의자로 분류가 된다. 채'식'의 식은 식생활에 한정된 단어다. 하지만 완전한 비건은 사실 식생활뿐만 아니라 소비하는 모든 것에서 동물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나 이전에 만났던 전 비건 직장동료는, 회사에서 연말 선물로 모든 직원에게 구스다운 조끼를 주문한다고 사이즈와 컬러를 조사할 때, 자기는 받지 않겠다고 정중히 거절을 표했다. 구스다운에 들어가는 거위털을 소비하지 않기 위함이었고, 그건 비건 문화에 생소했던 나와 몇몇 한국 직원들에게 인상깊은 일이었다.
물론 식생활에서만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채식주의자(Vegetarian)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은 이제 사실이다. 흔히 4개~7개로 분류하는 채식주의의 종류는 어디까지 채식으로 분류해야하는 가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일단 이렇게 4가지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유제품을 지칭하는 락토(Lacto)와 계란을 의미하는 오보(Ovo)를 이해하면 누가 무얼 먹고 먹지 않고는 사실 알기 쉽다.
락토 오보 베지테리안 (Lacto-ovo vegetarian)
- 고기나 해산물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락토 Lacto)과 계란(오보 Ovo)은 먹거나 소비한다. 일반적으로 유럽권에서는 Vegeterian이라고 소개하면 락토 오보 베지테리안인 경우가 많다.
(고기 X, 해산물 X, 유제품 O, 계란 O )
락토 베지테리안 (Lacto vegetarian)
- 마찬가지로 고기와 해산물은 먹지 않고, 계란도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먹거나 소비한다.
(고기 X, 해산물 X, 유제품 O, 계란 X )
오보 베지테리안 (Ovo vegetarian)
- 반대로 고기와 해산물과 더불어 유제품을 먹지도 소비하지 않지만, 계란은 먹거나 소비한다.
(고기 X, 해산물 X, 유제품 X, 계란 O )
비건 (Vegan)
- 고기, 해산물, 유제품, 계란, 그리고 꿀과 같은 동생물이 관련된 무엇도 소비하지 않는다.
(고기 X, 해산물 X, 유제품 X, 계란 X, 꿀 X )
여기에 비건보다도 까다롭다고 알려진 생식 중심의 식사를 하는 로우 비건(Raw Vegan)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만 먹는 프룻테리안(Fruitarian)도 있지만, 위의 4가지 채식에 비해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채식주의에 포함할 수 없다고도 하는 준 채식주의(Semi-Vegetarian)은 대략 3개 정도 된다. 준채식주의로 분류되는 만큼 고기나 해산물을 제한적으로 소비하며, 그 제한의 기준에 따라 분류가 된다.
페스코테리안(Pescetarian)
-해산물까지도 섭취하지만 고기는 먹거나 소비하지 않는다.
(고기 X, 해산물 O, 유제품 O, 계란 O )
폴로테리안 (Pollotarian)
-해산물도 섭취하고 닭, 오리, 거위,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의 고기까지도 섭취하지만 붉은 육고기는 먹거나 소비하지 않는다.
(가금류외 고기 X, 가금류 고기 O , 해산물 O, 유제품 O, 계란 O )
플렉시테리안 (Flexitarian)
- 채식주의를 기본으로 삼지만 유연하게(Flexibility) 종종 고기나 해산물까지도 먹거나 소비한다.
(고기 △, 해산물 O, 유제품 O, 계란 O )
내가 만난 채식주의자들의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뉘었다. 건강상의 이유 혹은 환경이나 동물존중,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나뉜 그들의 동기 중 비건인 이들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했다. 그러다보니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여러 형태로 반영된 비건의 삶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의류의 소재에서도 당연히 가죽이나 구스다운, 캐시미어 같은 것들은 소비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대체 소재가 많이 나와 화학적 인조 가죽 뿐만 아니라, 비건가죽이라고 부르는 사과, 선인장 등의 소재를 활용해 만든 가죽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비건 친구에게 혹시라도 무언가 선물할 일이 있다면,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한다.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삶의 지향점에 대한 존중이고, 친구라면 혹은 친구가 아니더라도 삶에 어떤 순간을 가까이 보내는 이라면 그 정도의 배려와 존중은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양한 삶의 형태가 공존하며 지지하는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존중은 기본 매너라고 느껴진다.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소비한다(Consume)는 단순히 돈을 주고 구매하는 행위를 뜻하지만은 않는다. 대게 무언가를 사용해서 소모될 수 있는 경우, 소비한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정의에 따르면,
소비(消費, consumption)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소모하는 일
을 말한다. 그러니까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동기와 함께 무언가를 소모하는 행위는 모두 소비에 포함된다. 내가 앞으로 이야기할 비건의 친구로서의 삶은, 이 소비의 행위로 인해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동기가 중심이 되어 이를 어떻게 존중하며 어우러지는가를 이야기한다. 식생활을 넘어섰다고 이미 말했지만, 식생활 내에서도 '먹는' 것을 넘어, '소비'하는 것에 고민한다. 그 둘이 뭐가 다르냐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고기를 먹는다는 자체를 이제는 너무 끔찍하게 생각하는 채식주의자들도 많지만, 비나가 내게 보여준 비건의 삶은 섭취와 소비가 충돌할 때, 동기에 대한 논리적 접근으로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한번은 비나가 이케아에서 콩고기로 만들어진 채식미트볼 메뉴를 시켰는데, 직원분이 자연스럽게 그 위에 크림소스를 얹어줬다고 한다. (아마 채식은 유제품도 먹기 때문에 비건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묻지도 않고 얹었던 것으로 우리끼리 추정해봤다.) 그래서 바꿔달라고 했냐고 물어보니, 그걸 바꿔달라고 하면, 이미 부은 크림소스는 버리게 될테고 거기에 채식미트볼도 버릴테니, 그게 더 비건의 방향과 맞지 않아 그대로 먹었다고 했다. 이건 내게 비건의 좀 더 세밀한 방향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거, 내가 먹어 내 몸에 들어가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진짜 쟁점은 내가 하는 결정들, 주되게는 소비로 다른 생명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는가라는 것이라 느껴졌다.
무튼 그래서 실수로 무언가를 비건 친구를 위한 음식이나 선물에 넣었다면, 무조건 낭비하기 보다는 한 번 물어보는 걸 추천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삶의 형태라기보다는 가치관일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