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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i Minkyeng Kim Jul 13. 2018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 우쉬굴리에 놀러오세요

새하얗고 웅장한 슈카라 산맥에 안긴, 해발 2500m 하늘과 가까운  곳

주그디디에서 5시간여를 꼬불꼬불한 산등성이를 따라 들어가다보면 새하얗고 웅장한 슈카라 산맥에 포근히 안겨있는 우쉬굴리가 있다.

길가의 소와 돼지와 개와 인사하며 라마리아 성당길까지 올라가면 따뜻한 하차푸리 냄새를 풍기며 마크발라 할머니가 기다린다.


◇코카서스의 보석, 조지아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지방에 위치한 조지아는 위로는 러시아, 옆으로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을 끼고 있는 보석같은 나라다.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인 카프카즈 산악지대에 위치해 예전부터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지만 지리적 특성상 주변국과 끊임없이 충돌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1922년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된 이후 자치공화국 수립을 주장하며 소련연방에 대항해오다 1991년 비로소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그루지야라는 러시아식 명칭을 벗고 조지아라는 영어식 명칭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우리나라에서 약 11시간 걸린다. 직항 운행편이 없어 러시아나 카타르를 경유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트빌리시에서 주그디디까지 6시간 기차를 탄 후 마르슈까를 두 번 갈아타면 하루가 꼬박 소요된다.

우쉬굴리는 해발 2500m에 위치한 마을이다. 소비에트 시대를 지나며 조지아 사람들은 계속되는 전쟁과 민족 간의 싸움으로 새 땅을 찾아서, 혹은 다툼을 피해서 이곳 우쉬굴리까지 왔다.

성질이 급한 여행자는 우쉬굴리에 갈 수 없다.

마르슈르카를 운전하는 조지아 사람들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온갖 이웃들과 인사한다.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거나 본분을 잊은 듯 여행자는 뒷전인채 수다 삼매경을 펼치기도. 이러거나 저러거나 도착만 하면 된다지만 한시가 아쉬운 여행자의 마음은 야속하기만 하다.

차에서 잠시 내려 풍경을 둘러보면 이들의 여유가 이해가 간다. 구름이 끼어있는 험난한 산길, 발길을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앞은 까마득하고 차는 덜컹거린다. 터널 같은 건 없다. 그저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달리고 또 달릴 뿐이다.

◇감바리쵸바, 구름 속 마을 우쉬굴리


처음 도착한 우쉬굴리에는 진흙을 뒤집어쓴 돼지가 처마 밑 그늘에 누워 자고 있다. 쌕쌕 혹은 드렁드렁하는 숨소리를 내며.

조금 더 걸어가니 쪼그려앉으면 나보다 몸집이 더 큰 털복숭이 양치기개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이한다. 개는 마을 위쪽에 자리한 마크발라 할머니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따라왔다. 내심 먹을 것을 기대했겠지만 할머니는 이미 많이 먹었다며 녀석을 쫓아낸다. 아쉬운 눈빛이다.

마르슈까에서 한참동안 덜컹거린 탓에 멀미가 나려고 해 짐도 풀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잠깐 눈을 붙이려는 찰나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또샤가 들어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또샤의 가족은 예카체린부르크에서 직접 차를 몰고 여기까지 왔다.

삼남매 중 막내인 또샤에게 차 타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진 않았냐고 물어보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밝게 대답한다. 동양인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걸 보니 많은 여행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모양이다.

또샤는 부스스한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어요. 우리 보러 갈래요?”

또샤는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히로인이다.

그녀는 우리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으며 외출에서 돌아와 방에서 잠시 쉬고 있으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저기 좋은 게 있어요, 우리 보러 갈래요?”(못이기는 척 따라가보면 좋은 것은 항상 거위나 새끼 염소나 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나도 좋았다.)

조지아의 대부분 게스트하우스는 식사를 제공한다. 아침 저녁 끼니 때가 되면 조지아 가정식으로 정성껏 식탁을 차려낸다. 오이와 토마토가 들어간 전통 샐러드와 치즈가 들어간 요리들이 많다.

조지아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하차푸리와 췌시트바르는 따뜻할 때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 난다. 연유가 들어간 팬케익도 자주 등장하는 메뉴다.

집주인인 마크발라 할머니가 산더미만큼 구워준 우리 식탁의 팬케익은 또샤와 그 형제들이 오고가며 한 개씩 다 집어 먹었다.

사랑스러운 이 러시아 가족은 우리보다 하루 일찍 바투미로 떠났다. 할머니의 팬케익을 봉투 가득히 담아 들고.

마크발라 할머니의 게스트하우스는 우쉬굴리의 여느 집들이 다 그렇듯이 낡고 삐걱댄다. 나무로 지어 군데군데 구멍도 많고 낮에도 밤에도 전기가 끊기기 일쑤다. 전력소모가 많은 냉장고는 밤에만 제 역할을 한다. 산 속 마을인 탓에 전력 수급이 원활치 않은 탓이다.

앞마당에 무성하던 풀들은 러시아 가족의 아빠가 거진 베어 주었다. 푸릇푸릇한 앞마당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끓여준 우쉬굴리 차이를 마시고 있으면 소도 지나가고 말도 지나가고 돼지도 개도 염소도 지나간다. 겁이 많은 거위는 낯선 사람이 오면 줄행랑을 친다.


◇우쉬굴리에 사는 사람들


마크발라 할머니는 우리에게 저녁을 차려주며 돈을 받지 않을 테니 하루 더 묵었다 가라고 얘기했다. 체코에서 열리는 영화 페스티벌에 참가 중인 그녀의 큰 딸과 인사하고 가라는 제안이다.

할머니의 큰딸은 영화 제작자다. 겨울 우쉬굴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Dede’ 감독이기도 하다. 그녀는 우리에게 딸 이야기를 하며 이번 페스티벌에서 그녀의 영화가 수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몇 번이나 성호를 그었다.

우쉬굴리에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

뒤에는 웅장한 슈카라 산맥과 코카서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앞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초록 들판에 말과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흐린 날엔 작은 마을에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다. 마치 동화 속 풍경 같다.

먹구름 뭉치가 바로 머리 위에 떠 있는 듯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밤이 지나고 이웃집 테무리 할아버지가 슈카라 산맥 근처 빙하까지 데려다주었다.

테무리 할아버지의 동생은 미술가다. 그의 그림으로 가득한 테무리 할아버지의 집은 ‘Art&Guest house’라는 이름이 붙었다.

테무리 할아버지는 소비에트 시절을 온 몸으로 겪었다. 할아버지는 그 때를 회상하며 “지독한 시대”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내 것이 없는 시대, 정부는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사람들은 더 나은 것을 위해 끝없이 투쟁했다.

소비에트에서 독립한 후 조지아는 가난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끝없이 싸웠다. 우쉬굴리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은 전쟁과 민족 간의 싸움을 피해서, 혹은 새로운 땅을 찾아서 구름과 가까운 이곳까지 흘러왔다.

테무리 할아버지는 “그 후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가 도와줘서 지금의 조지아는 선택지가 많다”고 했다. 어쩌면 그래서 조지아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우호적일지도 모른다.

빙하 구경이 끝나고 테무리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림을 구경하고 가라며 집 대문을 열어줬다.

할아버지의 동생은 우쉬굴리의 사계절을 화폭에 담았다. 눈이 쌓여 도시로 향하는 길이 끊기는 겨울철에는 우쉬굴리의 코시키(탑)마다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우쉬굴리에서는 누구나 더불어 산다.

웅장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한 슈카라 산의 정기를 받아서일까. 동네 개들은 집 마당까지 스스럼없이 들어와 문 앞에서 웅크리고 밤을 지샌다.

겨울 우쉬굴리의 하얀 화폭에는 개들의 흔적이 없다.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고산 마을 어느 지붕 밑 사람들이 손수 마련해준 지푸라기 더미에서 겨울을 날 녀석들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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