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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피엔스적 Aug 18. 2023

왜 우리는 헤밍웨이를 기억하는가

특별하지 않은 소소함이 가지는 의미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서, 헤밍웨이라면 6단어로 소설을 쓸 수 있을 거 같다. 저 여섯 단어만 봐도 장면이 그려지지 않은가. 장소도, 공기의 온도도, 시간도, 사람도 머릿속에 떠올려진다. 굳이 내 상상을 말하지 않겠다. 당신의 상상을 헤치고 싶지 않으니.


소설은 이야기고, 이야기를 쓴다는 건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소설가라면 이야기를 보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게 글을 써주는 게 임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헤밍웨이는 퍽이나 다른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다. 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는 다음이 궁금하고 궁극적으로 결말을 향해 빨리 달려가고 싶어 진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이야기는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지켜보게 된다. 굳이 시간을 빨리 돌리지 않고, 책장을 서둘러 넘기지 않고 지켜보게 한다.


자극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수십 년 전이 돼버린 헤밍웨이의 이야기는 심심할 수 있다. 아니, 심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헤밍웨이란 작가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당신은 무슨 이야기를 그릴 수 있습니까

‘한 어부가 84일을 고기를 잡지 못하다 모처럼 큰 고기를 낚았고, 3일에 걸쳐 사투를 벌이다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부는 지쳤고, 다가오는 상어 떼를 감당하지 못해 그만 다 뜯겨 버렸다’는 안타까운 얘기.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얘기다. 큰 기회를 낚았다가 놓쳐 버린 게 비단 저 어부뿐이겠는가. 수많은 어부들이 낚을 수 있었던 고기를 무수히 많은 이유로 놓쳐 버렸을 테다.


작가에게 상상력이 중요하다지만, 관찰력이 중요하다는 건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어디선가, 어느 순간에 헤밍웨이는 너무나 깨끗한 아기 신발을 보았을 거다. 상점에서, 시장 바닥에서, 미국에서, 프랑스에서, 어느 노(老) 상인이 등등.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헤밍웨이라면 아마 어느 곳에서든 깨끗한 아기 신발을 보고서 이미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냈을 거다.


문학(文學)에 사람(人)을 붙이면 인문학(人文學)이 된다. 헤밍웨이는 왜 문학에 사람이 붙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선상에서 톨스토이를 말하고 싶다. ‘행복한 이유는 모두 같지만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가게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그릴 수 있을까. 비를 맞는 고양이를 지켜보는 투숙객을 보고 당신 어떤 생각을 할까. 사막에서 한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를 본 당신은 그 사실을 언제까지 기억할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다

좀 더 쉽게 접근해 보자. 이별을 경험했을 때, ‘남들도 다 하는 이별이다’란 말이 위로가 되는가. 나의 이별은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어느 멜로드라마나 영화가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곳에는 겉으로 보이는 사건 말고도 ‘감정’이 개입이 된다. 감정이 개입 되면 평범한 사건이 평범하지 않게 된다. 인간은 다 각자의 감정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듯한 평범한 사건 나에 몇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헤밍웨이는 진짜 이야기꾼이다. 특별함과 자극만이 이야기가 되는 세상에서 헤밍웨이가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재밌다. 그래서 볼만하다.




한 줄 평 :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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