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갈팡질팡 설렘 속 혼돈

국내훈련소 이야기 1

by RUKUNDO

창고 깊숙이 넣어둔 캐리어를 꺼냈다. 펼쳐보니 생각보다 컸다. 무엇을 넣어야 할지 막막했다. 작은 배낭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한 달 동안 밖에서 지내야 하니 캐리어가 나을 것 같았다. 긴 시간 집을 떠나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짐을 챙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가방만 펼쳐놓은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상 구석에 두었던 입교 안내서를 꺼냈다. 생각해 보니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교육 일정과 필요한 물건 목록을 확인하고, 가방 안에 넣을 짐을 하나씩 정리했다. 새로 산 일기장을 넣고, 필통도 야무지게 챙겼다. 편한 반팔 티 몇 개, 모자 몇 개, MP3까지. 떠오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옮겨 담았다. 아무것도 넣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아무리 물건을 넣어도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머릿속도 마찬가지였다. 가득 찼다가, 텅 비었다가를 반복했다.


합격 문자를 받았던 날, 그 순간만큼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시험운이 좋다며 한껏 거만을 떨었다. 스스로도 대견했다. 눈앞에 핑크빛 미래가 펼쳐지는 듯했다. 두근거리는 설렘, 뜨거운 열정, 그리고 넘치는 자신감에 짜릿함까지 더해졌다. 앞으로 내 삶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지속된 건 아주 짧은 순간뿐이었다. 현실은 합격의 기쁨뒤에 몰려든 막막함이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마주해야 할 것은 부모님께 이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코이카 최종 합격자들은 부모님 혹은 보호자들의 파견 동의서를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지원 과정에서 부모님과 따로 의논하지 않았다. 갑자기 해외 봉사를 가겠다는 막내딸의 말은 부모님께 날벼락같았을 것이다.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이름도 생소한 나라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쉽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게다가 의논이 아니라 통보였으니, 실망과 섭섭함까지 더해져 설득은 쉽지 않았다. 결국 절반의 동의와 절반의 반대를 받아냈다. 마감 기한이 다 되어서야 동의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학교 정리였다. 졸업을 준비하며 연구실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교수님의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석·박사 선배들의 자료 수집을 돕는 공대 연구실의 막내 연구원이었다. 이제 그곳을 떠나야 했다. 연구실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휴학 소식을 전하자, 조언과 걱정이 쏟아졌다. 예상했던 반응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듣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지막 관문은 담임 교수님과의 면담이었다. 앞으로의 진로 계획을 묻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나름 단단한 논리로 무장했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의 한숨을 듣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긴 면담이 끝난 후에야 모든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휴학을 하는 것이 이렇게 험난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냐며 손가락질하는 이도 있었고, 어른이 되지 못한 철부지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평가가 틀렸다는 확신이 있었고, 나는 내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말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나는 반박했고,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 나름의 논리를 세워 날 선 말들에 맞섰다. 하지만 논리를 펼칠수록 내 안에 무언가 흔들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차게 설명했지만, 정작 나는 온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말들이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이제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이 선연히 다가왔다. 앞으로 닥칠 모든 일에 대한 온전히 내 몫이었다.


훈련소 입소가 다가올수록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영화, ‘마지막’ 외식, 그리고 ‘마지막’ 산책. 매일 타던 버스도, 익숙한 집 앞 공원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왠지 모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평소엔 당연했던 것들이 하나둘 의미를 더해갔고, 지나가는 순간마다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이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빈자리는 어느새 외로움으로 가득 찼다.


강요당한 선택도 아니었다. 오히려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사람들을 설득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작 한 달의 국내 훈련, 그리고 2년의 파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감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는데, 불안과 기대 사이에서 유난스럽게 갈팡질팡하는 내가 답답했다.


그래도 이 감정의 정체를 설렘과 성장통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출발한 열차는 되돌릴 수도, 멈출 수도 없으니 목적지까지 달려가야만 한다. 고민도 후회도 이제 늦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선택의 결과를 묵묵히 감당하는 것뿐이었다.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막상 출발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단단하다고 믿었던 성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질문과 평가에 당당히 맞섰고, 거센 시선도 잘 견뎌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내상을 입은 건 나 자신이었다. 선택의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것이 어른이 된다는 의미일까?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겨우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지원하기 전에 더 고민했어야 했을까? 아니, 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너는 도망치는 거야.'

'쓸데없는 방황을 하는 거야.'

사람들의 말이 또다시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는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능력이 있긴 한 걸까?

이렇게 빈손으로, 껍데기만 들고 떠나도 되는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밤까지 붙잡고 늘어지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기껏 챙긴 짐을 하나하나 다시 꺼냈다.

합격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산주황색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 그래, 좋은 시간이 분명 많을 거야. 순간을 느끼고 기록하며 담아야지.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준비한 두툼한 갈색 스프링 노트도 보였다.

- 이 어지러운 생각들을 그 안에 털어놓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면 되겠지.

좋아하는 노래를 가득 담은 MP3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복잡한 마음을 감춰주겠지. 흥얼거리다 보면 시간은 흐를 거야.


곧 아침은 밝아오고, 나는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을 향해 나아가게 되겠지.

keyword
이전 03화질문 속에서 길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