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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과 시작 사이

국내훈련소이야기 8

by RUKUNDO

입소 전에는 그저 막막했다. 마음은 갈팡질팡 왔다 갔다 했고, 첫날밤은 어수선했다. 낯선 얼굴들 속에서 묘한 긴장감에 시달렸다.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공부와 시험의 압박에 지쳐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틈만 나면 뛰어노는데 정신이 팔리곤 했다. 그렇게 어색하기만 했던 이곳에 하루하루 적응해 갔다. 루틴을 만들고, 익숙해지는 속도를 몸으로 실감했다. 훈련소에서의 삶이 일상이 될 무렵,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이곳에서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났다.


훈련소의 마지막은 결국 시작과 맞닿아 있었다. 떠나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었다. 끝을 미룰 수 없는 출발선이었다. 처음부터 이 날을 향해 달려왔다는 걸 알면서도, ‘끝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곳에서의 모든 시간은, 헤어짐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끝이 정해진 만남이라 아쉬움도 더했고, 조급함도 더했다. ‘진짜’ 마지막이 되니까, 비로소 실감이 났다. 끝이라는 것, 떠난다는 것, 그리고 이번 이별 뒤에는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활동복부터 가방, 책, 노트, 심지어 필기구까지 한가득 받았다. 집에서 이미 짐을 꽉꽉 싸 온 터라, ‘짐만 더 늘었다’며 툴툴거렸다. 익숙한 내 물건들을 고집하던 것도 잠시, 시간이 흐르자 훈련소에서 지급된 것들이 하나둘 ‘내 것’처럼 자리 잡았다. 이상하게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훈련소의 물건들이 편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물건에는 태극기 마크가 붙어 있었다. 활동복 언저리에 조용히 달려 있던 그 마크. 늘 봐왔으면서도, 지금에서야 뚜렷하게 보였다. 편해진 옷에 숨은 의미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였다. 익숙함 속에 파묻힌 태극기를 보자, 지난 한 달 동안 들었던 이야기들이 스르륵 머릿속을 지나갔다.


굳이 외교부 청사까지 가서 관용여권을 만들고, 국립의료원에서 팔을 걷어붙이며 예방접종을 맞았다. 국

립중앙박물관에서는 단체로 교육을 들었다. 추가로 전통문화와 한국의 정세 관련 수업도 들었다.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외교부 방문은 그럴싸한 구경거리였고, 전통문화 수업은 즐거운 체험 활동처럼 느껴졌다. 일정표 속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선명해졌다. 이건 단순히 해외에 나가는 개인이 아니라, ‘한국’을 등에 업고 가는 사람의 절차였다. 나는 한국의 대표가 되는 중이었다. 이 무게를 그때도, 심지어 어제까지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뿔싸. 나는 나라의 대표가 되는 것이구나.

내 진로 하나도 제대로 정하지 못해 비틀거리다 선택한 길이었다. 그저 좋은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 일이 어떤 책임과 의미를 가지는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남을 위해 헌신하겠다던 동기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매일 밤을 갖은 고민으로 채우면서도.


국제협력 전문가가 말했던, ‘우리는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그땐 그냥 ‘멋진 말’이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 문장이 제법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다. 내가 그 ‘도움 주는 나라’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내 역할이 조금은 또렷해졌다. 철없던 행동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지만, 이미 지난 것을 어쩌겠나. 한 달 동안 열심히 보냈고, 이제는 부딪히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뭐, 이미 기차는 출발했다. 뒤늦게라도 이 사실을 깨달은 게 다행이다.


그동안 무심코 입고 다니던 모든 것들이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앞으로 내가 어디를 가든,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더는 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태극기를 가까이 느낀 건 2002년 월드컵 때였다. 그때는 손에도 들고 다니고, 이곳저곳 스티커로 붙이며 신이 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팍에서 자리 잡고 앉아 나를 감시하는 느낌이다.


아직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버겁다. 그런데 국기를 등에 지고 뭔가를 대신하겠다고? 그럴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지하게 생각하자니 쉬기도 두려워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외면하지도 못하겠고, 없던 애국심까지 끌어올릴 수도 없었다. 어느 정도 타협을 하기로 했다. 적어도 다짐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하자.’ 정답을 알 수 없더라도, 적어도 가볍게 넘기지는 말자. 그 정도로 대신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마다 잠에 절어 비몽사몽 하던 동기들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와 구겨진 활동복차림이던 사람들이 오늘따라 말끔했다. 은갈치 같다고 부끄러워하던 단복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근사해 보였다. 셔츠 깃도 잘 세웠고, 타이도 반듯하게 맸다. 조금 멀리서 보면 회사원 같기도, 결혼식 하객 같기도 했다.


평소엔 장난기 가득하던 얼굴에서도 묘한 진지함이 보였다. ‘이제 진짜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눈빛에서 느껴졌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평소엔 사진 찍히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동기들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색한 포즈와 웃음이 가득한 사진일지라도 선명하게 남기고 싶었다.


진짜 떠날 준비라는 게 이런 걸까. 매일같이 붙어 있던 사람들이 이제 각자의 나라로, 각자의 마을로 흩어질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라오스로, 누군가는 에티오피아로, 또 나는 르완다로. 이제 우리를 묶어주던 이 훈련소도, 웃고 떠들던 강당도, 공터를 지키던 진돌이 진순이도, 맛있던 식당밥도 안녕이다.


모두가 조금씩 단단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일까. 나 역시, 한 달 전과는 다른 눈빛을 하고 있을까. 입소 첫날, 낯설고 어리둥절하던 내 모습과는 다를까. 내 얼굴 어딘가에도 이 한 달이 남긴 흔적이 있을 것이다. 훈련소의 마지막은 결국, 새로운 시작을 향한 출발선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마지막 날인데도 마음은 이상하게 복잡했다. 왠지 모를 뭉클함과 묘한 불안감이 뒤섞였다. 머리로는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 눈앞에 닥친 이별이 먼저 아쉬웠다.


아쉽고 또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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