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훈련소이야기 7
훈련소 생활은 여러모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기숙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아마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새벽같이 일어나 단체로 운동을 하고 같이 아침을 먹는다·. 그 후 각자 배정된 국가별 강의실로 흩어지는 모습은 중·고등학교의 분반 수업과도 닮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지어 수업은 학생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훈련 당시 파견 지는 페루, 르완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에티오피아, 튀니지, 라오스, 이렇게 일곱 국가였다. 당연히 각 국가마다 배워야 할 언어도 달랐다. 페루 단원들은 스페인어를, 인도네시아 단원들은 인도네시아어를 배웠다. 필리핀 단원들은 영어, 에티오피아 단원들은 아함라어, 라오스 단원들은 라오스어를 익혔다. 튀니지와 르완다 단원들은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각 국가별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었다. 덕분에 적어도 알파벳 정도는 읽을 줄 알았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라오스어나 아함라어(에티오피아 공용어)를 배우는 동기들보다는 나은 출발선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소한 문자 자체를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최소한 익숙한 알파벳을 보고 시작할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꽤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오만한 마음은 첫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무너졌다.
첫 수업이 끝나자, 좌절감이 몰려왔다. 고등학교에서 2년간 배운 진도가 고작 반나절 만에 끝나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규교육과정에서 12년 동안 영어를 배웠지만, 정작 외국인을 마주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그 긴 세월 동안 배웠지만 막상 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인의 어학교육이 아니던가. 하물며 교양 과목으로 배운 프랑스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위안은 발음 기호 정도는 익숙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학 실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수업은 철저하게 소수정예로 진행됐다. 내가 속한 반이 가장 인원이 많았는데, 그 조차도 9명이 하는 프랑스어 수업이었다.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느껴지는 낯선 분위기에 얼어버렸다. 책상 배치부터 낯설었다. 강사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고, 우리는 반원을 그리며 둘러앉았다. 동그란 책상 배치는 탈출구가 없었다. 어디를 봐도 강사와 눈이 마주쳤고, 딴짓할 틈은 없었다.
강사는 갈색 눈의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나의 입과 눈을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듣기 평가로, 듣기 평가가 끝나면 말하기 테스트로, 머리와 혀가 쉴 틈이 없었다. 처음 접하는 수업 방식이 신선하긴 했지만, 내 귀와 혀는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혀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프랑스어 특유의 긁는 발음(‘R’)을 따라 하다 보면 목도 칼칼했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했던 단어 외우기와 문법 공부가 차라리 그리울 지경이었다. 매일 수업을 들어도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럴수록 조급함이 커졌다.
훈련소에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현지어의 무게도 점점 더 커졌다. 조급함은 어느새 초조함으로 변했다. 사실 처음엔 파견을 가면 현지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친절한 통역사가 있을 것이고, 현지 지원팀도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었다. ‘Bonjour’와 ‘Merci’ 정도만 하면, 사는 데 큰 불편은 없겠지.’ 하지만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훈련을 받을수록, 내가 얼마나 현실을 몰랐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파견지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될 것이다. 주거를 구하는 것도, 일을 협의하는 것도, 계약을 하는 것도,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까지 전부 내 몫이었다. 내가 한 달 동안 배워야 하는 언어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그건 내 생존을 위한 언어였다.
나는 '생존'을 위해 배워야 했다. 이건 단순한 언어 공부가 아니었다. 시장에 가서 가격을 잘못 알아듣는다면? 집을 구할 때 임대 조건을 놓친다면? 이 작은 실수들이 내 삶을 뒤흔들 수도 있었다. 그러니 수업이 아무리 버겁고 어려워도 피할 수 없었다. 시험이 잦다고, 언어가 어렵다고 투정 부릴 여유도 없었다. 시험보다 더 무서운 건, 앞으로 살아갈 현실이었다.
‘과연 한 달 만에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현지어 수업은 갈수록 버거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배우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곧 생존의 언어였다. 한 글자라도 더 배우지 않으면, 나는 낯선 땅에서 그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으로 겉돌기만 할 것이다.
한 달이 지나면 M 놓고 Merci 정도는 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은 굳어가고, 혀의 감각이 사라져 갔다. 단어는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했고, 영어와 섞여 이상한 말을 뱉어내기 일쑤였다. 선생님도 좋았고, 수업도 재미있었는데, 정작 내 프랑스어 실력은 제자리였다. 말문이 트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어지는 기분이었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영어가 이렇게 그리울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