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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개 국어 구사자가 되었다.

르완다 이야기 6

by RUKUNDO

지난 몇 달간의 일이 꿈같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매일 비몽사몽이다. 깨어있는 시간이 꿈인지, 꿈속에 있는 시간이 현실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정신을 단단히 붙잡아야 하는데 집 나간 정신은 되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은..

“아!”

“우와!”

“아…?”

이런 감탄사만 종일 외치고 있다.

르완다식 옹알이를 시작하는 것인지, 어른의 옹알이인지는 조금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본격적인 현지적응훈련을 받은 지 며칠이 지났다. 한국에서 받았던 훈련과 비교하면 두서가 없었다. 주간단위 일정표라던가, 현지어수업 교과서라던가 최소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모든 일이 종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훈련도 상상 그 이상이다.


며칠 관찰하다 보니, 대략의 진행사항을 정리할 수 있었다. 평일은 우리 기수끼리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특별한 외부활동이 있을 때는 행정원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현지어수업 중간에도 들어오고, 장 보러 마트에 갔을 때 찾아와서 길이 어긋나기도 했다. 분명 한국인들이었는데, 현지화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보다. 아직 현지화가 안된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주말은 선배단원들이 우리 숙소로 찾아와 현지 적응에 필요한 팁을 알려주며 시간을 같이 보냈다. 팁을 알려준다는 명목하에 단원들끼리 신세한탄을 하고, 특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역시 주말이 제일 기다려졌다.


하루 일정은 별로 특별한 것도 없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현지어수업을 한다. 그 후에 점심을 먹고, 조금 있다가 현지어수업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필요한 물건을 사러 마트를 다녀오거나,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그러고 나면 저녁식사 준비할 시간이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하고 나면 어둑어둑해진다. 그 시간쯤 되면 몸이 녹초가 된다. 그제야 개인 정비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에 일기도 쓰고, 한국의 그리운 이들에게 메일도 보내고,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한다. 오늘 배운 것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져 침대로 가야 할 시간이 된다. 딱히 하는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피로도가 엄청났다.


현지어 수업으로 일과가 시작되는 것은 한국의 훈련소와 아주 비슷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배우는 언어는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영어와 현지어인 ‘'키냐르완다어'’였다. 한 달간 머리 쥐 나게 배운 프랑스어는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파견이 결정될 무렵 르완다 국가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당장 영어로 수업을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10여 년 가까이 영어를 배웠지만, 영어로 컴퓨터 과목을 가르치라고 하니 머리에 징소리가 울렸다. 대부분이 학교로 파견되어 교사로 일하게 될 우리 기수에게 영어공부는 필수적이었다.


영어수업은 우리 기수를 절반으로 나누어 아래층과 위층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수준별로 그룹을 나눈다고 인터뷰도 봤었는데, 딱히 수준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죄다 고만고만했다. 호주 유학을 갔다 온 사람이나, 정규수업 겨우 따라간 나나, 고급 어휘를 안다고 자부했던 선생님이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은 동일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우리 그룹의 선생님은 보츠와나 출신이셨는데, 굉장히 친절했다. 수업이라고 해봐야 교재도 없었고, 선생님이 던져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있어나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잘 접해보지 않는 수업방식이었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공부를 하고, 특정지문을 읽으며 해석하던 한국식 영어교육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소수 정예이니 입을 닫고 있을 수도 없고, 몰라도 모른다고 영어로 설명해야 하니 아주 피곤했다. 그럼에도 영어는 조금 나은 편이었다.


키냐르완다어 시간이 되면 흩어졌던 그룹이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때가 되면 고작 몇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다시 만난 동기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키냐르완다어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언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르완다에 문자가 없어 알파벳을 쓴다는 것 정도였다. 현지 사무소에서도 급하게 구한 듯한 키냐르완다어 선생님은 영어로 소통이 안 되는 분이셨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도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서로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며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아주 엉망진창이다. 예전에 TV예능에서 헤드폰을 끼고 소리를 크게 지르며 옆사람에게 단어를 전달하던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정말 고요 속의 외침이다. 아니다 외침 속의 외침이 더 맞겠다. 우리는 늘 시끄러웠으니까.

대환장 잔치였던 우리 수업을 조금 묘사하면 이렇다. 우선 우린 교과서가 없었다. 선생님이 뭔가를 설명하면 우리가 못 알아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선생님이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숫자나 사물을 설명하는 경우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문장에 대한 설명은 바디랭귀지를 통해 수업이 이어졌다. 손짓, 발짓, 눈치, 코치까지 다 동원해서 수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집단지성이 이럴 때 얼마나 유용한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선생님은 프랑스어는 잘하셨는데, 우리 중 그 누구도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방법은 이뿐이었다. 가끔 우리가 아는 프랑스어가 나오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 바디랭귀지, 칠판에 그려진 그림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수업을 이어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뭘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수업을 끝마친 우리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뿌듯함만 남아있었다. 이것도 시간이 익숙해지면 나아지겠지.


주말에 대화를 나눴던 한 선배단원의 말로는 프랑스어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키냐르완다어 선생님과 하는 수업과정이 앞으로 파견돼서 겪을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의견을 전달하면 프랑스어가 좋다고 했다. 한국에서 배운 약간의 기억이라도 남아있을 때 공부를 이어가라고 했다.


정리해 보면 영어, 키냐르완다어, 프랑스어 이렇게 3개의 언어를 앞으로 2달 안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중에서는 그래도 영어가 가장 편한 언어였다. 순탄치가 않다. 정말.


어느 순간 같이 방을 쓰는 언니와도 대화를 잘 안 하게 된다. 말이 잘 안 나왔다. 영어도 못하겠고, 키냐르완다어는 더 모르겠고,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도 못하겠다. 머리에 모든 것이 실처럼 엉켜서 사고가 정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나는 0개 국어 구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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