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이야기 10
높고 맑은 하늘, 드넓은 초원, 그리고 그 주위를 뛰어다니는 수많은 야생동물들.
그 초원을 뒤로하고 길을 걷다 보면, 맑은 눈의 아이들이 나를 맞이한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에 들어서면 잘 정돈된 정원과 깨끗한 컴퓨터실이 나를 반긴다. 반짝이는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즐겁게 수업하고, 수업 후에는 아이들과 학교 주변을 함께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하루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욕조에서 피로를 털어내고, 다시 내일을 기대하며 흐뭇하게 잠에 든다.
이것이 내가 꿈꿨던 르완다의 삶이었다. 과연 저 상상이 몇 개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한두 개는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꽤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상상은 늘 현실과 차이가 있고, 그래서 상상과 꿈은 멋진 게 아니던가!
한동안의 혼란과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다. 르완다에 적응했다기보다는 현지 적응 훈련에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이제 웬만한 일로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다만, ‘아, 여기가 르완다였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뿐이다.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혼자서도 숙소에서 시내에 있는 마트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모토 기사와 어느 정도 흥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이 알려준 지문을 달달 외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오토바이 택시의 적정 가격도 알게 되었다.
물건을 고르는 눈썰미가 조금 올랐다. 밀가루를 한 번에 고를 수 있게 되었고, 한국의 향기가 느껴지는 쌀도 금세 찾을 수 있다. 바게트처럼 생겼지만 모닝빵 맛이 나는 현지 빵은 마트보다 집 앞 슈퍼가 더 맛있고 저렴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레몬 맛 환타는 ‘르완다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뻤고, 마라쿠자 주스는 오렌지주스보다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리 실력도 아주 조금 늘었다.
르완다식 인사에 익숙해졌다.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AMAKURU(아마쿠루, 안녕)’라고 인사한다. 그러면 상대는 눈썹을 위로 올렸다가 내리며 “NI MEZA(니메자, 안녕)”로 화답한다. 단순한 인사지만 매일 마주하는 이 말들이 좋아졌다. 아직 비쥬는 익숙하지 않다. 대체 왜 볼을 두 번씩이나 맞대는지… 낯선 이들과 포옹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은 이 나라가 싫지 않다.
현지어 단어를 몇 개 알게 되었다. 현지 시장에 가서 상인들에게 질문 폭격을 던진 결과다. “Icyi ni iki?(이찌 니 이끼?, 이게 뭐야?)” 신공이다. 아이처럼 계속 이게 뭐냐고 물어댔더니 이제는 뭔지 알게 된 것들이 생겼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어나 영어로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말이 늘어간다는 것, 또 아주 가끔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가장 큰 변화는 현지어 이름이 생긴 것이라는 점이다.
이름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괜히 이 나라에 조금 더 받아들여졌다는 기분이 든다. 소속감을 준다고 해야 할까. 내 이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의 끝 글자만 따서 불러 달라고 했었는데 그래도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현지어 이름이 생기고 나니 대화할 때마다 분위기가 몽글몽글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얼마 전 현지어 선생님이 비장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오더니, 오늘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현지어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안녕하세요”, “안녕”, “잘 지내요”, “나는 잘 지내요” 같은 표현만 배우다가, 드디어 새로운 걸 배우게 된 것이다. 손짓발짓으로 안부를 묻는 단순한 표현들을 배우는 것에 조금 지쳐 있던 터라 기대가 되었다. 한 명씩 현지어 이름을 받았다.
평화라는 뜻의 MAHORO,
사랑이라는 뜻의 RUKUNDO,
희망이라는 뜻의 IBYRINGIRO,
축복이라는 뜻의 MUGISHA.
좋은 이름이 앞에 참 많이 나왔다. 드디어 내 이름을 받을 차례였다
‘NYANGE(냥게)’ 내가 받은 이름이었다. 르완다어로는 세상에 좋은 뜻은 다 붙일 수 있는 단어라고 했다. 현지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하얀 새를 일컫는 말이라고도 했다. 순수, 고결함, 총명함, 지혜로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좋은 뜻이 담겨 있음에도 내 이름을 들은 동기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르완다에서 굉장히 낯익은 단어였기 때문이다. 생수와 주스를 만드는 대기업의 이름이었다. 당장 책상 위에도 내 이름이 적힌 생수병이 널려 있었다. 주스병과 생수병에 있던 그 단어가 내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이 싫었다. 내 옆 친구는 “MAHORO(마호로)”, 희망이라는 뜻이었고, 옆자리 오빠는 “RUKUNDO(루쿤도)”, 사랑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나만 생수 이름이란 말인가! 이름에 담긴 좋은 의미보다도 생수병이 자꾸 떠올라 괜히 부끄럽고 섭섭했다. 다른 사람들은 멋진 이름을 받았는데, 왜 나만! 나를 놀리는 것인가 하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다. 오히려 키득거리는 동기들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조금 미웠다. 속도 모르고 웃으며 놀려대는 동기들도 야속했다. 이미 정해진 이름은 바꿀 수 없었다. 아니, 바꿔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한동안 수업 내내 뾰루퉁한 나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조용히 문장 하나를 적어주었다.
‘Inshuti yanje nyange.(인슈티 얀제 냐앙게)’ — ‘내 친구 냐앙게’라는 뜻이다.
‘나의’라는 뜻의 yanje와 내 이름 Nyange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쇼미더머니 결승에서 나올 법한 문장이었다. 좋은 이름이라며 고민해서 지어줬는데도 뾰루퉁하게 굴던 제자를 위한 위로였을 것이다. 멋진 라임에 그의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 내 이름이 자랑스러워졌다.
이 훈련이 끝나고 현지에 파견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그런 ‘내 친구 냐앙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