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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없고 맛없는 그날

르완다이야기 9

by RUKUNDO

억울했다.


다들 멀쩡한데 나만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진다던 두통은 떠날 줄 몰랐고, 숨은 턱턱 막혔다. 며칠이 몇 주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견뎌야 할지, 뭘 하면 나아지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병원도 약도 없고 아파도 그냥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다. 진짜 아픈 게 맞는지도 점점 의심스러웠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행정원은 제일 어린 단원이 제일 골골거린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화가 치밀었다. 내가 아프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아파서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책임한 말투로 떠넘기듯 말하는 그녀가 언짢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건 봉사활동이지, 저 관리자는 아니었으니까. 괜히 여기까지 와서 투정 부리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다.

끓어오르는 짜증만 꾹꾹 눌렀다.

홀로 숙소에 남겨졌다.

모두가 나를 두고 떠났다. 눈물이 났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몸에 10배쯤 무거운 중력이 얹힌 듯, 이불 위에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손가락은 간신히 움직였지만, 몸 전체는 얼어붙은 것 같았다.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닌데, 꼭 그런 느낌. 머릿속은 여전히 뿌옇고, 몸은 축 처져 있었다. 바시락거리는 소리에 옆에 자고 있던 M 언니가 깼다. 언니는 침대에 파묻혀 있는 나를 보더니 눈이 커졌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온몸에 10배쯤 무거운 중력이 얹힌 듯, 이불 위에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손가락만 간신히 꼼지락거릴 뿐, 몸 전체는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닌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뿌옇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바시락거리는 소리에 옆에서 자고 있던 M 언니가 깼다. 침대에 파묻힌 나를 본 M이 다가왔다.


“오늘 웬일로 누워있노?

안 일어나나?”

“몸이 이상해”

M이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시원한 손바닥이 느껴졌다. 열이 나고 있었다.


그날은 르완다 제노사이드 박물관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오랜만의 외부활동이었는데 결국 따라가지 못했다. 동기들이 하나둘 집을 나서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눈물이 났다. 혼자 뒤처진 기분. 나만 실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기운이 돌지 않았다. 기운이 없다기보다, 그냥 무너진 상태였다. 사실 기운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침대 대신 거실 소파에 몸을 뉘었다. 텅 빈 집에 조용한 공기를 느끼며 멍하게 있는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부엌에 밥 해놨다. 버리지 말고 다 무라.
나중에 내랑 제노사이드 박물관 같이 가자. 자라.”

M이었다. 무뚝뚝하기로는 전 세계 1등일 것 같은 사람.

아침에 내 이마 위로 얹혔던 그녀의 차가운 손길과는 반대로, 이번엔 따뜻함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정감 없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오히려 선명했다.


부엌으로 가보니 냄비 안에 어설프게 썰어 넣은 야채와 퍼진 쌀알이 뒤섞여 있었다. 죽이라고 하기엔 밥에 가깝고, 밥이라고 하기엔 죽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M의 말이 생각나, 한 그릇을 덜었다. 안 먹고 버리면 혼날 것 같기도 하고, 약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입을 떠 넣는 순간, 입안 가득 비릿한 맛이 퍼졌다. 도대체 뭘 넣어야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걸까.
평생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없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저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먹고 나서야 비로소 손에서 수저를 뗐다. 그제야 몸 안으로 따뜻함이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몰려오던 울컥함과 무기력함이, 이상한 음식 맛에 묻혀 사라졌다.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웃음이 났다.


내일은 오늘보다 건강해져야겠다. 이 음식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멋없고 맛없던 그날, 모든 게 서툴렀던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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