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T 4
발 밑에 박스가 하나, 내 품 안에는 온갖 짐이 가득 들어있는 배낭이 있었다. 몇 주를 르완다에 살았는데 오늘에서야 르완다에 덩그러니 남겨진 듯했다. 버스가 원래 이런 공간이었던가.
생각해 보니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이렇게 길게 간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에서야 르완다가 왜 ‘천 개의 언덕을 가진 나라’라 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산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길이 모두 산길이다. 언덕이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나를 어지럽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이 천 개의 언덕을 아우르는 르완다의 버스 운전사는 초능력을 가진 게 틀림없다.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을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아슬아슬하게 잘 간다. 안전을 걱정하고 싶지만 내가 의지할 곳은 품 안의 가방뿐이었다.
꼬불꼬불하다는 말이 부족할 만큼 아슬아슬한 길을 얼마큼 지나왔을까, 훈련소에서 보냈던 한 달과 그동안 르완다에서 그동안 보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MP3에 가득 담아 온 감성 음악 때문인지, 생전 처음 경험하는 비포장 산길을 빠르게 오르며 겪는 멀미 때문인지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겠지.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몽롱한 기분이다. 눈이 감겼다.
눈을 뜨자 키갈리에서 3시간 떨어진 파견지에 도착해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빨간색 픽업트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몇 시 버스를 타고 어떻게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내 짐을 냉큼 받아 트럭에 실어주었다. 내가 근무할 곳의 교감선생님과 함께 근무할 컴퓨터 교사라고 했다. 악수와 아직은 낯선 비쥬를 가볍게 나눴다. 도착한 것이 실감이 났다.
내가 근무할 곳은 “기세니 과학중고등학교”였다. “기세니”는 아름다운 호숫가에 위치한 도시로 현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콩고접경지역으로 전쟁의 위험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길거리 곳곳에 유엔평화유지군을 볼 수 있으니, 위험하다는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버스터미널에서 학교 가는 길에 보이는 그 지역은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다.
어쩌면 내 머릿속이 전쟁 같아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미숙한 현지어 실력,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수업에 대한 압박이 머리와 가슴속을 꽉꽉 채워 다른 것들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일지도.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서니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광등도 켜지지 않는 커다란 공터 같은 강당에 모두 모여 앉아 환영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얼굴은 붉어지고 온몸이 땀에 젖었다. 열심히 공부했던 현지어 인사말이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았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최대한 담담한 척 자리에 앉았다. 이름 모를 나라에서 온 동양인을 배려한다며 현지어 대신 프랑스어로 행사를 진행해 줬다. 물론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건 프랑스어나 현지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마이크가 전달됐고, 이동되는 마이크를 따라 고개를 빠르게 움직였다. 눈치를 보다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따라 치고, 그렇게 몇 번이 흘러가고 어느새 마이크는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호흡을 크게 하고, 더듬거리며 짧은 현지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어떤 이름으로 나를 소개할지 고민하다가 현지어 이름을 선택했다. 박수소리가 나면 바로 앉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내 오른손을 잡고 높이 들었다. “인슈티 양제, 냥제”라고 외친다. 무슨 소리람… 사람들이 큰 박수로 환호해 주었다. 옆에 선생님한테 슬쩍 물었더니, “내 친구 이냥제”라는 뜻이라고 한다. 비슷한 발음이라 라임을 맞춰주신 것인지, 잔뜩 얼어있는 나에게 주는 응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어두운 강당 안에 작은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낯설기만 했던 공기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느낌이 들었다. 진저리 치던 이름이 내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이 냥제의 삶의 시작을 축복해 주는 자리 같았다.
이렇게 나의 새로운 길이... 이 냥제의 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