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첫째 날

OJT 5

by RUKUNDO

그만하고 싶었다. 더는 무리였다.

몸도 마음도 한계라고 외치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각에 짓눌려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딱 쓰러질 것 같은 순간, 환영식이 마무리되었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나를 보더니 교장선생님이 우선 퇴근하라고 하셨다.

마음속으로만 한계라고 생각한 줄 알았는데, 이미 온몸으로 나의 상태를 사람들에게 알린 모양이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디든 가서 짐을 풀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우두커니 강당에 서 있는데, 노란색 원피스와 터번을 쓴 여자가 다가왔다.


현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장이었지만,

가볍게 지은 미소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그런 카리스마였다. 따뜻한 눈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름은 쥬디.

이 학교의 회계 담당자라고 했다.

(사실 여기부터는 제대로 이해한 건지 자신이 없다.

눈치와 빈약한 현지어 실력을 동원했으니, 어쩌면 완전히 다른 직업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오늘부터 내가 묵게 될 집의 주인이라고 했다.

앞으로 3주 동안 쥬디네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처음 본 사람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고 하니,

괜히 긴장되고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에게도 낯을 가리고 심지어 사물에게도 낯을 가리는 내가 아니던가.

잘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간색 픽업트럭이 강당입구에 도착했다.

짐을 트렁크에 실었고, 차에 타고 오던 남자는 익숙한 듯 자리를 트럭 뒤로 옮겨 탔다. 빈 운전석 옆자리에 쥬디와 내가 비좁게 앉았다. 몸이 서로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 앉았지만 차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져 잔뜩 얼어있는 내 덕분이었다. 적막하다는 단어가 어울리는 순간이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에 꽤 많은 흙먼지를 만들어 내고서야 파란 철문 앞에 도착했다. 쥬디 집에 도착했다. 삐걱거리는 철문이 열리고 쥬디집에 도착했다.


처음 마주한 집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정말 집이 어두웠던 걸까, 아니면 마음이 어두워 그렇게 보였던 걸까.

쥬디가 안내해 준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방 안에 화장실까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텅 빈 느낌이었다.

사실 방은 키갈리에서 동기와 함께 묵었던 곳과 구조가 비슷했다.

문득 뿔뿔이 흩어진 동기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나처럼 지금쯤 이런 기분일까.


천장에 매달린 하얀색 캐노피가 흘러내렸다.

머리 위로 툭 떨어진 천 뭉치에 괜히 심술이 났다.

흘러내린 캐노피를 툭툭치고 있던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쥬디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저녁시간까지는 별다른 일정 없어요.

짐 풀고 푹 쉬어요.”

그녀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르완다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바람소리마저 들어오지 않는 조용한 방 안.

작게 내쉰 한숨이 메아리가 돼서 다시 내 마음을 울린다.

짐을 풀긴 해야 하는데 어디에 어떤 물건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 괜히 망설여진다.

쓸데없는 고민이 깊어진다.

되는대로 캐리어를 열어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대강 꺼냈다.


간단히 씻고, 땀에 절은 옷을 갈아입고 책상에 앉았다.

그간의 시간들이 사진처럼 한 장씩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맨날 지지고 볶고 싸우던 동기들이 떠올랐다.

오늘의 이 정신없고도 길었던 하루를, 나누고 싶었다. 누구 와든.


일기장과 프랑스어 교재,

그리고 키냐르완다어를 배울 때 썼던 노트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일기장에 몇 자 끄적이다 서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멋지게 버스도 잡아탔고, 환영 인사도 잘했고,

카리스마 있는 멋진 집주인도 만났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업무 협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집은 또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감이 잡히지 않으니 막막해지고, 막막하니 두렵고, 결국 서러워졌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우선 잠을 청해 보기로 했다.

일어나서 내일의 내가 해결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나의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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