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첫째 날 – 끝나지 않는 하루
OJT6
쿵. 쿵쿵. 쿵쿵쿵.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였다. 아니, 밤 10시에 무슨 일이람.
문밖으로 나가니, 아까 소개받았던 쥬디네 집 관리인이 서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썹을 위로 치켜뜨며 인사를 건냈다
“Amakuru(아마쿠루)”
황당했다. 아마쿠루는 르완다에서 흔히 쓰는 인삿말로, ‘잘 지내냐’는 뜻이다.
밤 10시에 남의 방 문을 두드려 놓고 잘 지내냐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런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더 황당했다.
“Ni meza(니 메자)”
‘잘 지낸다’는 뜻이다.
영어를 배울 때도 “How are you?” 하면
“I’m fine, thanks. And you?”가 자동으로 나오더니....
자동으로 대답이 내뱉어진다. 언어는 달라져도 사람은 참 안 변한다.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관리인이 나를 붙잡는다.
조금 놀랐다. 나는 아직 잘못한 것도 없는것 같은데 ….
인사가 뭔가 잘못된 걸까?
실수한 게 있었나?
설마, 갑자기 집에서 나가라는 건가?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짧은 순간에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손을 잡는다.
약간 긴장이 됐다.
손을 뿌리친다고 해도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차라리 아까 봤던 쥬디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관리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식당이었다.
밤 10시에, 식당이라고?
아까 잠시 보고 싶던 쥬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처음보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니, 아마 내 자리인 것 같았다.
당황하는 사이, 쥬디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그곳이 내 자리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빈자리에 앉았다.
르완다 전통옷을 입은 쥬디와,
그 옆에 양복을 차려입은 그녀의 남편.
말끔하게 차려입은 쥬디의 아이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옷이라도 좀 챙겨 입고 오는 건데.
나는 훈련소에서 나눠준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바지 차림이었다.
단복이라도 입고 나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입은 옷은 부끄럽고, 상황은 잘 파악되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쩔줄 몰라 하고있는데, 쥬디가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그녀에게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르완다에서는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와 환영하고 싶을때,
밤늦게 저녁 식사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티타임 문화가 남아 있어 보통 저녁은 8시쯤 먹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더 늦게 식사를 준비한 거라고 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식탁 위 음식들이 심상치 않았다.
뷔페에 온 듯, 여러 가지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나를 이렇게까지 환영해 주다니,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식탁까지 오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마음은 고마운데 눈치도 없이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밤 10시에, 그것도 이런 격식 있는 저녁을 먹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껏 준비해준 식사였고, 더부살이하는 입장에서 가족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초대받으면 밥을 잘 먹어야 예쁨을 받지 않던가.
나는 최대한 접시에 음식을 담고, 가리지 않고 입에 넣었다. 거의 처음 먹어보는 르완다 현지식이었지만, 의외로 입맛에 잘 맞았다. 특히 수제로 만든 매운 소스는 속까지 개운하게 만들어주었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식탁 위를 오갔지만, 결국 대화는 손짓과 발짓으로 이어졌다.
나는 어디서 왔고, 몇 살이며, 한국식 이름과 가족 소개까지 줄줄이 해냈다. 외국에서는 나이나 사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저녁 식사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쥬디가 자리를 뜨며 말했다.
“막내를 재워야 할 것 같아"
그 틈을 타 나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괜찮다면 나도 먼저 들어가도 되냐고.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쥬디의 남편은 편하게 내 집처럼 있으라며 쉬라고 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던 내 등 뒤에서,
쥬디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 아침은 7시예요”
저녁을 이제 갓 먹었는데,
아침 시간을 듣자마자 벌써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