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니에서 첫 우기를 맞이하다

OJT 7

by RUKUNDO

날씨가 쾌청하다.
아침 식사 전, 가볍게 산책을 하고싶었다. 다른 가족들이 깰까 조마조마 했지만, 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기세니에서 맞이한 첫 아침은 더할나위없이 상쾌했다. 출발전부터 가지고 있던 긴장감이 조금은 풀린 걸까. 우기라더니 바람이 한결 선선해진 듯하고, 건기 때보다 먼지도 덜 날리는 것 같다. 언제 폭포수 같은 비가 쏟아져 땅을 때릴지 모르지만, 그 순간의 깨끗한 하늘과 적당한 바람이 좋았다.


식사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갔더니 쪽지와 음식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원하면 방으로 음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말과, 앞으로 편하게 지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쥬디의 글씨인걸까. 다행히 영어라 단어 몇 개라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해진다. 어제 저녁 식사 때 불편해하던 내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준비된 빵과 음료를 간단히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챙겨온 가장 깔끔해 보이는 옷을 골라 입었다.

백팩에 노트북과 필기도구를 넣고, 혹시 몰라 긴팔 하나도 챙겼다. 어차피 쓰지 않을 것 같아 우산은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은 싫으니까. 오늘까지는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차가 온다고 했다.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을 해야하니, 오늘 가는길에 길을 잘 살펴봐야겠다. 문 앞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며 기다리다보니, 어제 타고왔던 빨간색 픽업트럭이 보였다. 차 문밖으로 들어오는 공기도 시원하고 모든 것이 좋았다.


아침 7시 30분. 역사적인 첫 출근을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운전기사가 교무실로 안내해 준다. 교무실에 날 위한 자리는 없었지만 어제 만났던 교장선생님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준다. 이 아침에 출근해 있는 이사람들은 뭘까? 사무실이라는 공간, 그것고 교무실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니 알수없는 중압감이 느껴졌다. 학생일때 교무실은 썩 기분 좋은 공간은 아니였으니까.


교무실에 들어서니 그제야 내가 선생님이 된 것이 실감났다.
어디를 둘러봐도 선생님들뿐이었다. 선생님들 사이에 있는 나. 내가 선생님이라니.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을 꽤나 싫어했었다. 억만금을 줘도 선생님은 절대 안 한다고 다짐했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리바리할 새도 없이 회의 테이블로 이끌려 갔다.
노란색 표지와 분홍색 표지의 노트 두 권을 받았다. 업무일지와 수업일지라고 했다. 노란색에는 매일 업무한 내용을 적고, 분홍색에는 수업 계획과 수업 내용을 적는다고 했다. 낯선 노트를 받아 들고 한참 앉아 있는데, 코이카 사무실에서 정해준 ‘코워커 파비앙’을 만날 수 있었다. 코워커는 파견 근무지에서 나의 적응과 업무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파비앙이 눈을 마주치자마자 나를 덥석 안았다.

이미 그 상황에 당황했는데, 곧 볼을 가볍게 맞댔다. 좌우로 번갈아 볼에 입맞춤을 하는데, 나는 너무 놀라 파비앙을 그대로 밀쳐 버렸다.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다짜고짜 포옹을 하고 얼굴이 닿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처음 만난 동료, 그것도 앞으로 함께 일할 선생님을 밀쳐 버렸으니 앞으로 학교생활은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떡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냥제!”

누군가 나를 톡톡 치며 불렀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를 부른 사람은 파비앙이었다. 그는 방금 한 행동이 반가운 마음에 건넨 ‘비쥬(bise)’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받은 훈련소에서도, 현지 적응 훈련에서도 그 누구도 이런 인사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나 봤지, 이게 이곳 문화권인지 내가 알았겠는가. 벨기에에서는 흔한 인사라지만, 파비앙이 특별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내가 낯을 심하게 가려서 더 당황한 걸까. 그래도 밀친 건 너무했다.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하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짧은 순간 머릿속을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이 진공상태로 변해버렸다. 다시 굳어버렸다.

그 순간 파비앙이 미안하다며 악수를 건넸다. 실수한 것은 나였는데…

나는 아니라고, 내가 당황해서 그렇다고, 인사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뒤늦게 사과를 전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나라에 대해 알고 싶다며, 천천히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자고 웃었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선해보이는 그 웃음에 나도 따라 웃음이 났다.


내 마음이 르완다의 우기를 닮았다.

하늘이 무너져내릴 것 같이 무섭게 비를 토해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금새 쨍쨍한 해를 비추는 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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