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타기도 하고, 짧은 시간에 꽤 많은 일이 지나간 듯해 혼란스러웠다.
흩어진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달달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파비앙이 회의도 끝났으니 시원한 음료 한잔 하자고 했다.
학교 옆 가게에서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방금 친 사고는 그새 잊은 듯, 나는 속도 없이 신이 났다.
쫄래쫄래 파비앙을 따라갔다.
오늘도 시원한 환타를 시킨 사람은 나뿐이었다.
르완다에 낯선 것을 나열하라면 셀 수도 없지만 그중 가장 혼란스러운 건 사람들이 따뜻한 탄산음료와 따뜻한 병맥주를 즐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냉장고가 없는 가게가 많아서 그런 가 했는데, 내가 주문할 때면 오히려 아무도 찾지 않아 차갑다 못해 살얼음까지 언 음료를 주었다. 늘 그것이 이상했다. 현지인 친구에게 물었더니 따뜻하게 마시는 게 더 맛있단다. 차갑게 마시는 내가 신기하다며 서로 웃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떠올라 따뜻한 환타를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환타만큼은 한국식으로, 시원하게 마시기로 다짐했다. 낯선 세상에 하나쯤 익숙해도 괜찮을 것 같다.
르완다에는 한국에 없는 레몬맛 환타가 있다.
한국에서 왜 팔지 않는지 억울할 정도의 맛이다.
좋아하는 음료도 생기고 마실 수 있는 선택지도 늘어났다는 사실이,
나름 이곳에 적응한 것 같다는 반증처럼 느껴져 괜히 뿌듯했다.
그 뿌듯함에 조금 젖어볼까 했는데, 앞에 앉은 파비앙과 존의 대화가 부러워졌다.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 화가 났다.
만약 언어를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왔더라면 지금 생활이 한결 편했을까.
사람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영어도 못 하고, 프랑스어도 못 하고, 키냐르완다어는 더더욱 서툴어 매 순간 부끄러운 내가 싫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늘 그렇듯 이런 생각의 시작은 원망이었다.
프랑스어를 배워야 한다기에 국내 훈련소에서 밤을 새워 공부했는데,
그 노력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싫었다.
국가에서 파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현지 정보가 부족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금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대사관도 없고 영사관마저 없는 나라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래도 귀국한 단원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모를 수 있지?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제 겨우 10번째 기수가 도착하지 않았던가.
4기부터 10기까지 모두 르완다에 근무 중이니 아직 정확한 정보가 정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설령 한국에서 키냐르완다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강사나 교재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상황은 어차피 도긴개긴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어라도 제대로 구사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겨우 한 달 남짓 공부했을 뿐이다. 하루에 몇 시간씩 매달렸지만, 난생처음 접하는 언어가 금세 익숙해질 리 만무했다. 지금 당장 유창하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어쩌면 욕심이고 교만일지 모른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배우면 되겠지. 나머지는 나하기에 달린 것이리라.
원망하는 나와 그런 나를 달래는 나 사이의 대화가 꽤 길게 이어졌다.
오늘도 스스로 ‘미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취업도 하지 않은 채, 대학교 4학년이 이곳에 온 것 자체가 제정신은 아니었다.
토익시험 한 번 본 적도 없고, 남들이 쌓아두었다는 자격증도 하나도 없었다.
교환학생은커녕, 이곳이 내 첫 해외 생활이 아니던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쓸 일도 거의 없는 언어 때문에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니,
나는 이미 더 이상해질 것도 없는 상태였다.
어차피 별난 상황이라면 더 고민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원망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의 이 순간도 곧 과거가 되고,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잘하면 그만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해보자 싶다. 집을 구해 터전을 마련하고 나면, 그때 키냐르완다어 튜터도 구하고 프랑스어 공부도 시작할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는 지성팍을 알아도, 유나 킴을 알아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아는 이는 없었다.
스스로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몇 달간의 생활 속에서 내가 느끼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겁이 나서 그런지 자꾸 혼자 원망하고 혼자 대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지 말자.
해보자.
우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집에 돌아갈 순 없지 않은가.
환타 한잔 앞에 두고 한참을 멍하게 있는 나를 파비앙이 부른다.
그제야 길고 긴 나와의 대화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