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두절(無頭節)

by RUKUNDO
무두절 (無頭節)

회사에서 직장 상사(頭)가 없는 날. 직장 임원과 팀장들이 휴가나 출장 갔을 때, 부하직원들이 자유롭게 업무를 볼 수 있는 날을 말하며, 부하직원들의 어린이날이라 불리고 있다.


회사에서 직장상사가 없는 날을 일컫는 말이다.

회사원들의 어린이날이라고도 부른다.

다 큰 어른들에게 ‘어린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자유롭고 천진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다.


신입사원시절 회사 상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회사에 오는 게 즐거우신가요?”

상사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얘가 어제 뭘 잘못 먹은 건가 아니면 나를 놀리려고 하는 건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사뭇진지한 내 표정을 보고 나서는 씁쓸한 웃음과 합께 대답했다.

“나도 회사원이야.”

그때는 그의 답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회사원인 데는 내가 원한 답은 아니었는데….


회사는 피라미드식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수평적 구조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계단형 구조에도 미치지 못하는 확실한 피라미드형태다. 서로 ‘물고 씹고 뜯고 맛보며’ 계층사이에 희미하게 그려진 사다리를 올라가기도 하고, 시원하게 미끄러져 계층 밖으로 밀려나 버리기도 하는 그런 곳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이의 상사가 되기도 하고 부하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갑을관계라고 해야 할까. 평소에는 나의 상사였던 이가 감사가 오거나 민원이 생기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럴 때면 갑자기 줄의 맨 뒤에 서있던 내가 맨 앞에서 선 자가 된다. 그리고 나의 상사는 보이지도 않는 저 아래로 사라져 버린다. 명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직함은 아직도 나의 상사이지만, 형체는 부하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고 해야 할까. 직함과 책임이 같이 가지 않는 특수한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회사에서 상급자, 하급자, 동료 이렇게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회사원 1명을 평가한다. 인기투표에 가까운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희박한 확률로 진솔한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요즘 시대는 상급자도 하급자도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 같이 회사의 맨 아래 계층, 그중에서도 맨 뒤에 서있는 사람에게 무두절은 상사가 출장을 가거나 휴가를 간 날이다. 상사에게는 부하직원이 휴가 간 날이 되기도 한다. 즉각적인 업무처리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감시하는 눈 하나가 줄어드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상사의 상사가 없을 때도 무두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에게 무두절은 존재하고 행복하고 한없이 마음이 가벼운 날이다. 심지어 나는 무두절에는 출근이 즐겁고, 민원성 전화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조금 슬픈 일이다. 서로가 없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이 쓸쓸하고 이해되는 씁쓸함이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견뎌내는 그런 아름다움 따위는 꿈꿀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내일의 무두절을 꿈꾸는 이중적인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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