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動機)
(명사)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
회사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출근을 하는 이유는 뭘까?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도 지치지 않고 보고서를 쓰고,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업무를 반복하며 괴로워하는
그 행위에 동기가 있을까?
출근길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꽉 막힌 도로 안의 저 차 들은 어제도 본 것 같고, 그저께도 본 것 같다.
같은 시간, 같은 도로에 나앉은 사람들. 차창 너머에서도 피로가 느껴진다.
아무리 서둘러도 다시 몰려든 차에 다시 꽉 막혀버리는 이 출근길.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걸까 궁금해진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실무와 동떨어진 상사의 지시.
사실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은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덕에 수치를 맞추고
다음날 똑같은 업무를 조금 다른 숫자로 시작한다. 아무 의미도 없이.
매일이 괴롭고 납득이 되지 않지만 여전히 회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엇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이 자리로 불러내는 것일까?
월급
이 두 글자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물론 월급은 강력하다.
매달 카드 결제일을 가볍게 넘기게 해 주고,
대출이자를 무마시키며, 저녁 밥상 위 반찬의 가짓수를 결정한다.
월급이 없으면 넘기지 못할 고비가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회사원을 월급의 노예라 한다지만 노예근성이 전부는 아니다.
돈만 보고 다닌다면 첫 출근의 설렘은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니, 나는 아니라고 믿는다.
출근만 해도 하루 일과의 80%는 다 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남아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나머지 20%에 숨겨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것이 있다.
점심시간에 동료와 나누는 넋두리.
누군지 모르는 이가 전해주는 따뜻한 눈인사.
자리를 비운 사이에 놓여있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혼자 꿋꿋하게 지키는 작은 절차와 규칙.
이런 사소한 것들이 보여 버티는 힘을 준다.
안정감을 준다.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알 수 없는 감정.
그것이 단순한 출근노예, 월급노예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닐까.
새로운 부서에 배치되어 생경한 업무를 받아도 기를 쓰고 끝내 적응해 냈다.
엑셀 함수조차 몰라 몇만 개 되는 숫자를 손으로 맞추면서 버텼다.
보고서 양식 하나를 맞추기 위해 수십 번 도 넘게 고쳤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만 많이 가는 일도 꾸역꾸역 처리했다.
프린터가 고장 나면 토너를 흔들고 때려가며 고쳐냈고,
자간과 줄간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실적이 결국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돌아갈 게 뻔한데도 자리를 지켰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술자리에서 소주를 병째 들이켜며
다신 안 하겠다 다짐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 그 자리에 대한 의리.
아무리 하찮고 비루하고 외로워도,
나와 함께해 주는 책상과 의자에는 묘한 동질감이 있다.
손때 묻은 키보드,
매일 해야 할 일정이 빼곡히 적힌 달력,
컵바닥에 눌어붙은 커피자국.
그 사소한 것들이 나와 하루를 함께 버티며 다시 이 자리에 앉게 만든다.
어제가 괴롭고 오늘도 괴롭고 내일도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내가 있을 수 있는 이 자리에 대한 고마움이 남는다.
그것들이 가끔 보람을 꿈꾸게 하고 만족할 날을 그리게 하고 결국 작은 희망이 된다.
내가 지키는 이 시간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 믿음 속에서 나름의 자부심을 얻는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다시 회사로 불러내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