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2

by RUKUNDO
동기(動機)
(명사)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

회사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출근을 하는 이유는 뭘까?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도 지치지 않고 보고서를 쓰고,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업무를 반복하며 괴로워하는

그 행위에 동기가 있을까?


출근길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꽉 막힌 도로 안의 저 차 들은 어제도 본 것 같고, 그저께도 본 것 같다.

같은 시간, 같은 도로에 나앉은 사람들. 차창 너머에서도 피로가 느껴진다.

아무리 서둘러도 다시 몰려든 차에 다시 꽉 막혀버리는 이 출근길.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걸까 궁금해진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실무와 동떨어진 상사의 지시.

사실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은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덕에 수치를 맞추고

다음날 똑같은 업무를 조금 다른 숫자로 시작한다. 아무 의미도 없이.

매일이 괴롭고 납득이 되지 않지만 여전히 회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엇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이 자리로 불러내는 것일까?


월급

이 두 글자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물론 월급은 강력하다.

매달 카드 결제일을 가볍게 넘기게 해 주고,

대출이자를 무마시키며, 저녁 밥상 위 반찬의 가짓수를 결정한다.

월급이 없으면 넘기지 못할 고비가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회사원을 월급의 노예라 한다지만 노예근성이 전부는 아니다.
돈만 보고 다닌다면 첫 출근의 설렘은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니, 나는 아니라고 믿는다.


출근만 해도 하루 일과의 80%는 다 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남아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나머지 20%에 숨겨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것이 있다.


점심시간에 동료와 나누는 넋두리.

누군지 모르는 이가 전해주는 따뜻한 눈인사.

자리를 비운 사이에 놓여있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혼자 꿋꿋하게 지키는 작은 절차와 규칙.

이런 사소한 것들이 보여 버티는 힘을 준다.

안정감을 준다.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알 수 없는 감정.

그것이 단순한 출근노예, 월급노예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닐까.


새로운 부서에 배치되어 생경한 업무를 받아도 기를 쓰고 끝내 적응해 냈다.
엑셀 함수조차 몰라 몇만 개 되는 숫자를 손으로 맞추면서 버텼다.
보고서 양식 하나를 맞추기 위해 수십 번 도 넘게 고쳤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만 많이 가는 일도 꾸역꾸역 처리했다.
프린터가 고장 나면 토너를 흔들고 때려가며 고쳐냈고,

자간과 줄간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실적이 결국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돌아갈 게 뻔한데도 자리를 지켰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술자리에서 소주를 병째 들이켜며

다신 안 하겠다 다짐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 그 자리에 대한 의리.
아무리 하찮고 비루하고 외로워도,

나와 함께해 주는 책상과 의자에는 묘한 동질감이 있다.


손때 묻은 키보드,

매일 해야 할 일정이 빼곡히 적힌 달력,

컵바닥에 눌어붙은 커피자국.


그 사소한 것들이 나와 하루를 함께 버티며 다시 이 자리에 앉게 만든다.

어제가 괴롭고 오늘도 괴롭고 내일도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내가 있을 수 있는 이 자리에 대한 고마움이 남는다.


그것들이 가끔 보람을 꿈꾸게 하고 만족할 날을 그리게 하고 결국 작은 희망이 된다.


내가 지키는 이 시간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 믿음 속에서 나름의 자부심을 얻는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다시 회사로 불러내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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