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1

by RUKUNDO



동기 (同期)
1. (명사) 같은 시기. 또는 같은 기간.
2. (명사) 학교나 훈련소 따위에서의 같은 기(期)
3. (명사) 같은 시기에 같은 곳에서 교육이나 강습을 함께 받은 사람


회사에 들어와 생활하다 보면 참 많은 동기들이 생긴다. 같이 입사를 한 사람들. 같은 사업소에 동일한 시기에 전입 온 전입동기. 어쨌든 비슷한 시기를 겪는 사람들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입사, 전입, 전출, 사택, 사업소 등등 어지간한 단어에 동기를 붙인다. ‘동기’라는 말만 붙어도 괜히 가까운 기분이 들기 때문인 듯하다.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그나마 한 겹은 벗고 만날 수 있는, 참 희한한 관계다.


모든 동기중 제일은 역시 입사 동기다.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가장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존재다. 조금 민망한 실수도 털어놓을 수 있고, 옆자리에 앉은 꼰꼰한 선배들 욕을 마음껏 해도 괜찮다. 서로의 실수를 공유하고, 같이 고민하고 웃고 사고치기를 반복하며 점점 더 끈끈해진다. 비록 근무하는 지역과 업무는 다를지라도, 문제가 생기면 너 나 할 것 없이 집단지성을 발휘하게 된다. 물론, 집단지성이 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간혹 운이 좋아 풀리는 문제도 있지만, 바보들은 여러 명이 모여도 바보짓을 할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주변 선배나 상사에게 묻는 것이 더 현명하다.


입사의 기쁨을 알리는 ‘합격’ 문자를 받은 직후, 곧바로 ‘신입 교육 안내’ 문자가 온다. 교육기간, 준비물, 사전과제 등 관련 공지사항이 빼곡히 적힌 문자다. 여행안내 문자처럼 여겼으나, 어딘가 불친절하고 과하게 자세하다. 그래도 ‘합격’이라는 강한 단어와 감격에 그 싸한 느낌은 금세 묻혀버린다. 그때 눈치를 채고 도망갔어야 했다.


신입사원 교육장에 가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수십 명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나는 회사 사람이다. ‘동료’라고 묶일 수 있는 사람이지만, ‘동기’라는 단어로 먼저 만나게 된다. 아기 오리가 처음 본 존재를 엄마라고 인식하는 것처럼. 회사에 들어왔다고 하기도 애매한 시기, 모든 것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그때 만난 인생 첫 동료. 같은 출발선에 서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내 편으로 삼아버린다. 이 것이 바로 ‘동기’라는 단어가 특별해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동기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진다. 물리적 거리야 어쩔 수 없지만, 관념적인 거리는 조금 쓰리다. 과거의 우리가 욕하던 악습을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고, 오히려 앞장서는 새로운 악습을 만드는 녀석들도 생긴다. 이미 유명해져서 악명을 메이커처럼 달아버린 놈들도 있다. 분명 같은 출발선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멀어져 버린 건지 안타깝다.


주변에 날 선 이야기가 들릴 때면, 인성은 괜찮은 애라며 오해가 있을 것이라 최선을 다해 보호막을 쳐본다. 동기사랑 나라사랑까진 아니어도 그냥 뭐라도 하고 싶다. 소주 한잔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섞어 조언을 건네도 이런 녀석들의 귀는 닫힌 지 오래다.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할 말도 점점 사라지고 그렇게 동기를 하나, 둘 떠나보내게 된다. 가뜩이나 답답한 회사생활에 쓸쓸함과 외로움까지 더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생각하고,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안 남은 동기들과의 연락도 점점 뜸해진다. 한때는 송년회, 신년회에, 월별 모임까지 살뜰히 챙겼지만, 이제는 경조사가 있어야 겨우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간혹 필요한 자료나, 부탁할 일이 있어 찾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 연락이라도 오면 반갑다. 과거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나, 그때의 추억을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변해버린 시간이 야속하고, 잃어버린 젊음과 열정과 패기가 그립다. 내일은 동기 녀석과 점심이라도 한 끼 해야겠다. 서로의 인생을 안쓰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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