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by RUKUNDO
전화 電話
1.(명사)전화기를 이용하여 말을 주고받음.
2.(명사)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었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시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든 기계.

사실 나도 전화받는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퇴근하면 전화를 무음으로 바꿔둔다. 아니 회사에서부터 내 개인 핸드폰은 늘 무음이다. 보통은 사선 전화로 오는 전화를 우선으로 받게 되고, 내 핸드폰은 자연스럽게 등한시된다. 회사원이 아닌 나를 멀리 던져두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핸드폰 벨소리에 집착하던 어린시절의 나도 있었다. 32화음 전화기가 나오자마자 사고싶다며 엄마를 조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들어보면 조잡하기 그지없지만 그당시에는 32화음 벨소리를 틀어두고 팔을 빙빙돌리면 64화음처럼 들리기도 한다며 좋아하던 기억도 있다. 언제부턴가 내 삶에 벨소리가 사라지고, 진동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무음이 너무도 익숙해졌다. 회사 전화 업무에 질려서인지, 아니면 전화벨 소리를 잊어버려서인지 모르겠다.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 어쩔수없이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전화’가 아닐까 싶다.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다들 뭐 그렇게 할말이 많은 것일까. 일상업무이긴 하지만 시간낭비라는 생각도 많이들고, 귀찮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화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상사들은 일이 많다 생각하지도 않고, 콜센터 근무자가 아닌이상 실적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전화업무는 에너지 소모는 많고 시간도 많이 뺏긴다. 알맹이는 없는데 힘만 빨아먹는 아주 별로인 업무다. 그래서 전화가 많은 업무는 모두 기피하나 보다.


내가 신입 사원이었을 무렵, 회사에는 다양한 전화 인삿말이 존재했다. 평범하게 ‘여보세요’로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던 나는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았다가 선배에게 탕비실로 끌려갔다. 그는 나에게 지청구를 쏟아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부서의 전화 응대 매뉴얼을 작게 인쇄해 전화기 위에 붙여놓아야 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선배가 있는지 없는지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응대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기분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콜센터 근무자도 아닌데, 무슨 이런 매뉴얼이 필요한가 하고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OOO부 OOO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 이름과 소속을 아니까 전화했겠지 싶기도 했는데 이렇게 혼날일인가 싶어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내가 맡은 업무는 유난히 전화응대가 많기도 한 자리라 매번 전화가 올때마 저 풀버전을 읊어대려니 입이 아플지경이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면서 지금은 전화응대 매뉴얼같은 고리타분한 것들이 사라졌다. 그렇다고해서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부서와 소속을 대며 전화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는 아직도 신입사원때의 전화매뉴얼을 애용하는 편이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요즘은 전화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를 거는것에 나도 몇 번씩 망설여진다. 지금의 내 전화가 누군가에게 공포가 된다고 생각하니 번호 누르는 것이 나도 무섭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메신저를 걸어오는 후배들을 보면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대면해서 이야기하면 더 쉬울텐데, 전화로 이야기하면 더 빨리 끝날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전화가 싫어도 회사 업무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도전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렇다고 그걸 강요하고 싶진 않다. 각자의 업무 스타일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 답답해도 그들의 속도와 스타일에 맞춰 대응하려 하는 중이다. 다만 다른 사람과 전화를 할일이 생기면 조금더 친절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의 경험으로 남아 그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지 않길 바라며.


그러다 보면 문득, 예전 선배들이 떠오른다. 강제로 친절을 가르쳐주던 그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보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도 지적해주거나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다. 신입 시절, 나에게 전화 응대 매뉴얼을 알려주며 억지로 친절을 주입하던 선배가 지금은 오히려 그리울 지경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전화를 친절하게 받는다는 평을 듣는다. 이제는 그런 친절이 전화 예절이고, 하나의 예의라 생각한다. 비록 시작은 강제로 부여된 가짜 친절이었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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