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T 15
그렇게 실패만 거듭하던 어느 날이었다.
존의 차에 올라타자 낯선 남자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눈빛이 차갑게 스쳐 지나가자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일었다. 내가 어색한 기색을 보이자 존이 곧장 자신의 친구라며 소개했다. 파비앙이 학교 일로 함께하지 못해 대신 부탁했다고 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말 없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파비앙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지다. 하지만 학교 일이 우선이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낯선 이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그날 보여준 집들은 이전과는 달랐다. 조건이 괜찮은 곳들이 연달아 나왔다. 학교에서 다소 거리가 있긴 했지만, 물탱크가 있었고 집 크기도 알맞았고, 전기도 들어오는 듯했다. 뜨거운 물을 데우는 보일러는 없었지만, 그것쯤은 내가 마련하면 될 일이었다. 서너 채를 둘러본 끝에 드디어 마음이 끌리는 집을 발견했다. 집 두 채가 마주 보고 있어 동기 S와 나란히 살면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월세가 정해진 예산보다 조금 높았다.
OJT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성적 사고가 멈춘 듯했다. 생활비에서 50달러쯤 줄이면 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액수만 보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의 한 달 생활비가 워낙 빠듯했기에 쉽게 결심할 수 없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령 부탁한다 해도 송금받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르완다에서는 은행 거래가 원활하지 않아 해외 송금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집주인과 통화를 끝낸 존의 친구가 빠른 결정을 재촉했다. 인기가 많은 집이라 언제 나갈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2~3일만 더 고민해 보겠다고 답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본 집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조건도 대체로 적합했다. 시장이 가까웠고, 학교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 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며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결심했다. 조금만 아끼고 덜 쓰면 될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1년에 한 달치 생활비를 더 쓰는 셈이었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최소한 길바닥에 나앉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다음 날 아침, 나는 존을 만나자마자 그 집을 계약하겠다고 말했다.
존은 집주인에게 잘 전달하겠다며 좋은 선택이라 응원까지 해주었다. 그 말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큰 짐을 덜어낸 듯, 발걸음마저 가벼워졌다. OJT 기간에 정해진 과제를 모두 해낸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차올랐다.
집주인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존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르완다 문화가 그렇단다.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앞으로 집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연락하라는 걸까. 문화가 다르다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며칠 뒤 계약하기로 한 날짜만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계약 전 계약서를 미리 받아볼 수 있다고 해서, 그때 집주인을 직접 만나 물어보면 되리라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잘 흘러갈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