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OJT 16

by RUKUNDO

며칠째 일이 잘 풀린다.


컴퓨터실에 전기가 들어왔다.

방학기간이라 컴퓨터실에 전기를 제공할 수 없다던 학교에서 내 사정을 봐주기로 했다. 홈스테이 중인 쥬디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컴퓨터실 발전기에 기름이 가득 찼고, 어두컴컴하던 초록대문 뒤 컴퓨터실에 불을 켤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등불은 밝게 들어오는데 컴퓨터는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부팅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실에서 제대로 동작하는 컴퓨터는 절반이 채 안되었다. 그래도 개학하고 알았다면 당황했을 텐데, 문제를 수습할 시간을 얻게 된 것 자체로 위안이 되었다. 남은 OJT기간 컴퓨터를 살펴보기로 했다. 컴퓨터수리를 해본 경험도 관련 지식도 부족하지만, 뭐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OJT기간 동안 내 맘을 졸이게 하던 집문제도 해결되었다.

오늘 드디어 집 계약을 하기로 한 날이다. 수첩형 전자사전을 챙기고,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프랑스어 사전도 챙겼다. 집 계약은 처음이지만, 르완다에서 처음 경험하는 게 너무 많다 보니 처음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고, 해결을 해야만 하는 상황일 테니 조급 해하지 말자는 말만 되뇌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영어와 프랑스어가 빽빽하게 적힌 계약서를 받아 들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전자사전과 사전을 이용해 단어들을 하나씩 찾아봤다. 한국어로도 낯선 단어들이 많았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히 확인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준비해 온 계약금을 내고 입주날짜를 정하고, 입주일에 전체 금액을 지불하기로 했다. 개운한 마음이 들었다.

OJT에서 하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이 정도면 잘 풀린 것 같았다. 컴퓨터실 정상화가 남았지만 그 또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흘러넘쳤다. 그동안의 실패와 낙담이 밑거름이 되어 나에게도 좋은 날이 찾아온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흙먼지도, 동네 아이들이 외치는 ‘니하오’ 소리도 귀엽게 들렸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난 다음날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컴퓨터실에서 컴퓨터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누가 초록 철문을 두드렸다.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밖에 나가보니 존과 어제 만난 며칠 전 집을 찾아준 존의 친구가 서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환타 한잔을 사달라고 했다. 다짜고짜 환타를 사달라는 것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덕분에 큰 숙제를 해결한 것에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옆 가게로 향했다.


시원한 레몬환타를 시켰다. 그리고 둘러앉아 감사했다고 덕분에 큰 숙제를 마칠 수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앞에 앉은 존과 존의 친구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도와줬으니, 계약한 집 1년 치 집세의 30%를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계약한 금액이 월 350$이었으니 1260$를 요구했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내가 뭔가 잘못 알았나 싶어 되물었다.


“왜?”

내 물음에 존이 말을 이었다.

원래 집을 계약하면 소개해 준 사람에게 그 정도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내 집을 구하느라 많이 고생했고, 자기 친구도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 정도 금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너무도 정확한 금액 산출 방식과 당당함에 기가 막혔다.

침착하게 응대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당황하다 보니 머리가 잘 돌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았다. 어색한 존의 영어와 부족한 내 영어실력으로는 대화가 잘 되지 않았고, 혼자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파이앙이든 쥬디든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우선 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를 하자는 말로 대단을 대신했다.


학교로 가자하니 둘의 얼굴색이 변한다.

존의 친구가 삿대질을 하고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한 위협적인 말투로 뭐라고 외친다. 존은 통역도 해주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나는 가게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실체도 없는 고지서는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그렇게 그대로 앉아 한참을 있었다.


당장 1,280$이라는 금액은 너무 큰 금액이었다. 현지 정착금으로 받은 돈의 전부도 금액이 되지 않았다. 그 당시 현지 교사의 월급이 200$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현지 교사 6개월치 월급을 넘는 금액을 요구하고 사라진 것이었다. 돈도 돈인데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제까지 친구라고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존의 친구에게 줄 돈을 마련해야 하는 걸까.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지? 동기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봐야 해야 하나?

원래 르완다의 문화가 그런 걸까? 선배단원에게 연락을 해봐야 하나?

지금이라도 계약금을 포기하고 집 계약을 포기하면 되는 것일까?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일까?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하다가, 마음이 답답해 그대로 호수 근처로 갔다.

호숫가 앞 백사장에 앉아 한참을 앉아있었다.


주변이 어둑해지자 쥬디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오지 않아 걱정을 한 모양이다. 별다른 말도, 설명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전 15화드디어, 집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