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by RUKUNDO

키보드 치는 소리가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타자기 소리를 닮은 기계식 키보드.

손목에 좋다는 인체공학적 키보드.

캐릭터가 덕지덕지 붙은 귀여운 키보드.

얇고 조용한 소리가 나는 노트북 키보드.

다양한 종류의 키보드가 사무실 이곳저곳에 퍼져있다.


자신의 개성을 아무리 감추고,

조심해도 키보드는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그 소리는 나의 출근과 존재를 주변에 알리는 신호가 된다.


토독토독.
타닥타닥.
쾅.
우다다다 우다다다다.


자리마다 울려 퍼지는 키보드 소리는 제각각이다.
그 소리는 사용자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분노에 찬 키보드 소리는 멀리서도 금세 알아들을 수 있다.


나도 분노 표출용 기계식 키보드를 앞에 두고 있다.
상사가 되먹지 않은 지시를 하거나,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두드리곤 한다.
조용한 사무실에 키보드 소리가 울리면 괜히 쾌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중에 밀려오는 민망함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학교 다닐 때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키보드를 치게 될 줄은.

회사원에게 키보드는 연필이자 볼펜이다.

언젠가 이 키보드의 홍수에서 벗어날 날도 오겠지만,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애증의 키보드와 일상을 함께할 수밖에 없다.


이녀석 덕분에 손목은 아프고,

많이 치다보면 손가락까지 저려온다.

키보드 받침대, 인체공학적 키보드,

이런저런 걸 사용해봐야 의미가 없다.

사용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현대사회 직장인에게 키보드사용을 줄이는 방법은 없다.


키보드는 단순해 보이지만,

꽤 복잡한 단계를 거쳐 내 생각을 모니터로 보여준다.

먼저 내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압력을 만든다.

그렇게 작동된 스위치가 전기신호를 발생시킨다.

발생된 전기신호는 연결된 PC에서 문자로 변환된다.

그렇게 우리 화면에 글자가 보이는 것이다.


이런 단계는 회사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행위들과 닮아 있다.
일상의 업무가 모여 회사가 멈추지 않는 동력이 되고,
그렇게 쌓인 ‘평범한 일상’들이 회사를 움직인다.
그러나 이 신호들이 아름다운 결과로 변환되어 보고되어야 하는 순간,
보통은 문제가 발생한다.


신호 변환 단계에서 여러 가지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일은 일이 아닌 게 되고, 당연시된다.
이것이 키보드의 문제인지, 해석하는 시스템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다면

망가진 컴퓨터를 두들기듯 톡톡 쳐서 고쳐버리고 싶다.


하지만 사용자의 답답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눈치없는 키보드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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