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인간 수업> 후기
이 글에 스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수는 공부 잘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서연고 대학에 진학해서 평범한 삶을 꿈꾸는 조용한 학생이다. (서연고가 평범하진 않은데) 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휴대폰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학원비를 번다. 규리는 부잣집 딸이고 학교에서는 핵인싸다. 게다가 똑똑하고 운동도 잘한다. 지수와 규리는 같은 반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규리는 '아무도 모르게' 학생 신분으로 '밤 일' 하는 지수의 비밀을 알게 된다. 둘은 풀 수 없는 뫼비우스 띠에 갇히게 된다.
권력 수업?
<인간 수업>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기존 드라마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사회를 축약해서 보여준다. 학교에는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강해서 권력을 가지는 학생이 있고 공부나 재력 혹은 인맥으로 권력을 가지는 학생이 있다.
드라마를 보며 자연스레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권력을 갖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걸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할 순 없었다. 학교에서는 운동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싸움을 잘하면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권력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도 권력을 갖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도 그 전부를 욕망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일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일진은 있었다. 일진 남학생과 일진 여학생들이 사귀었다. 일진들은 연애를 통해 권력을 공유하기도 했다. 교내 연애도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에서 소위 짱이라 부르는 '2학년 대가리' 기태와 민희는 커플이다. 민희는 기태와 사귀면서 기태의 권력을 공유하고 기태도 민희의 재력을 이용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15년이나 흘렀지만, 2020년 <인간 수업>을 보며 공감한다는 건 그만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단 뜻이다.
학교 드라마에 등장하는 '조건 만남'
소재가 파격적이다. 지수, 민희, 규리는 같은 반이다. '아무도 모르게' 지수는 포주 일을, 민희는 조건 만남을 통해 돈을 번다. 둘은 함께 일하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는 모르는 동업자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규리는 지수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규리는 지수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이때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학교에서는 일진들이 지수를 괴롭히기 시작하고 민희를 둘러싸고 경찰들의 수사가 시작된다. 민희가 경찰과 만나 상담하면 민희만 두려워지는 게 아니다. 지수도 불안하다. 점차 지수의 불안함은 가중되어 잠에 들면 악몽을 꾼다.
모두가 이해되었다. 기태의 마음을 얻고자, 기태의 권력을 공유하고자, 조건 만남을 통해 돈을 버는 민희. 평범한 삶을 살고자 밤에 포주 일을 하는, 고아나 다름없는 지수. 숨 막히는 가정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규리까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드라마 막바지로 갈수록 규리와 지수는 서로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규리와 지수는 조건 만남을 통해 돈을 버는 범죄자다. 그들이 범죄를 멈추기를 바라면서도 내심 들키지 않았으면 했다. 범죄자들을 응원하다니 무서운 바람이자 응원이었다. 휴대폰으로 시작된 작은 범죄는 불처럼 번졌다. 사람이 죽기 시작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지수가 규리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그 어딘가로 떠나길 바랐다. 끝까지 살아남아 행복했으면 했다. 가능하면 죄짓지 않고서.
평소 '포주'를 떠올리면 괴물을 떠올렸다. 하지만 난 드라마에 이입하게 되면서 괴물을 응원하고 있었다. 내가 범죄자 지수와 규리에게 이입했던 까닭은 부모의 부재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한 인격을 판단할 때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환경에 따라 인간은 변한다. 환경에 잘 적응할 정도로 인간은 강하지만, 환경에 쉽게 지배될 정도로 인간은 약하다. 이것이 <인간 수업>을 통해 배운 인간에 대한 것이다.
결국 내 시선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로 향했다. 물론 개인의 범죄를 전적으로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자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한 건 이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는 드라마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인간 수업>을 보면서 복잡했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인간 수업>에서 그린 가상의 시공간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론인지 알 수 없는 사회와 인간관계 모습이 마구 꼬여버린 실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