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 Aug 02. 2020

이력서를 출력 해오라는 회사

우당탕탕 인테리어 현장관리인 면접 일기 #1

*개인 경험을 토대로 한 글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비롯한 특정 명칭은 모두 가명입니다.*


“안녕하세요. 잡구하라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취업하셨나요?”

“아니요, 이직 준비 중입니다.”

“저희는 A라는 회사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는 싸이 아파트 편의시설 공사와 잠정역에 있는 호텔 객실 리모델링 공사입니다. 공사 규모가 커서 일 배우시기엔 좋을 겁니다. 면접 진행하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이 번호로 명함과 주소를 보내겠습니다. 화요일 오전 10시에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력서 출력해서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미션을 받았다. ‘이력서를 출력해서 오세요.’라는 미션이다. '면접 보기 전에 이력서 보지 않을 거다, 면접 보면서 이력서 훑어볼게’라는 뜻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력서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함의한다. 즉 구직자 입장에서는 이력서를 대충 써도 합격할 수 있다는 ‘그린 라이트’가 될 수 있다. 반면 동시에 급하게 사람을 뽑는 회사이거나 이력서도 보지 않고 사람을 뽑을 정도로 형편없는 회사임을 증명하는 ‘빨간 불’ 일 수도 있다. 빨간 불이라면 면접에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사실 애초에 인테리어 회사라고 해서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면접에 가기로 했다. 준비했던 시험들이 마무리되었던 시기였다. 무료함을 달래고 업계 동향도 파악해볼 겸 면접에 참여했다. 업계의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졌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약 면접에 가지 않았다면 이 탐사면접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면접 당일 약속 장소에 나가 전화했다. 담당자가 전화를 한 차례 받지 않았다. 10분 정도 지났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대기음이 한참 울린 뒤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보낼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진흙 묻은 바지와 땀에 절은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서 터벅터벅 걸으며 앞장섰다. 지하주차장을 지나 현장사무실에 도착했다. 현장사무실에는 하도급 업체 사장들과 샵 드로잉 직원 그리고 면접을 제안한 차건방 실장이 있었다. 나는 인사와 함께 이력서를 건네었다.     


차 실장은 면접을 진행하며 동시에 업체 사장들과 시답잖은 잡담을 나눴다. 믿기 힘들었지만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둘 중 하나였다. 차 실장은 예의가 없거나 사람을 뽑을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둘 다였을 수 있겠다. 면접자인 나를 앞에 두고 3분을 내리 통화했다. 그리고서 주소와 경력 그리고 퇴사 이유를 물었다. 차례로 답했다. 퇴사 이유와 함께 근무조건에 관해 이야기했다. 연봉과 휴무에 대해서는 당당하면서도 예의를 갖춰 의사를 전달했다.


“저는 이 일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 일이 좋다고 하더라도 휴무는 보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봉은 이력서에 적어놓은 만큼은 받고 싶습니다.”

“그 부분은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이야기 나눠보도록 해요. 만약 룰러스틱 씨가 입사하신다면 이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호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호텔 현장으로 가게 되면 A 소속으로 일을 하게 되고 지금 있는 아파트 현장으로 오게 되면 B 소속으로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본사 부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한 후에 좀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나중에?’ 아주 익숙한, 짙은 냄새가 난다.     


“호텔 현장에 나억대 부장이 있습니다. 그 부장님과 인터뷰를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부장이 워낙 바쁘긴 한데 제가 시간을 빼놓을 테니 내일 오전 10시 30분에 시간 되면 인터뷰 한 번 더 진행할 수 있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뭐지? 사람을 뽑을 생각은 있었던 것 같다. 예의가 없고 무식한 실장이었다. 면접자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통화하는, 기본이 안 된 실장. 화도 났지만 동시에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잡구하라에 접속했다. 이력서를 열람한 회사들을 조회할 수 있다. A회사의 이름은 없다. B회사의 이름만 있었다. A회사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해당 홈페이지에는 유명 건축사사무소의 소개가 함께 있었다. 대기업 그룹 계열의 회사였다. B회사는 정보를 찾기 힘들었고 인터넷 취업 사이트에도 소개가 빈약했다. 주소조차 안내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마도 A회사가 수주하여 B회사가 협력업체로 시공에 참여한 것 같다. 뭔가 싸하다. 꺼림칙하다. 이 정도면 다음 날 면접을 안 갈 법도 하다. 하지만 애초에 구직을 하기 위해 간 면접이 아니었다. 난 이미 면접자가 아니라 탐사보도 기자가 되었다.


다음날 10시 30분에 잠정역에 도착했다. 현장사무실에 가자 설계 직원만 있었다.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차가 밀려서 좀 걸린단다. 실장과 함께 사무실에서 부장을 기다렸다. 부장은 11시 20분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많이 바빠 보였다. 바빠서 그랬을까. 부장 역시 면접 전 미리 이력서를 보지 않았다.  

“이력서 가져왔어요?” 부장이 말했다.

‘아니, 어제도 출력해왔는데 오늘도!?’

내가 뜸을 들이자 차 실장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이력서 뽑아오랬잖아요.”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무슨 말을 하랴. 군말 없이 난 의자에 앉았다. 차 실장은 어제 펜으로 끄적거린 구겨진 이력서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리고 부장에게 건네었다. 면접은 전 날과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퇴사 이유를 말했다. 첫 번째 회사는 휴무, 두 번째 회사는 지방 근무, 세 번째 회사는 폐업을 이유로 퇴사했다고 답했다.


“꼰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실내건축업이 그래요. 매출과 직결된 일이다 보니 못 쉬는 날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한 8~10년 정도는 고생해야 해요. 역량에 따라 다르지만 고생해서 현장소장 달면 억대 연봉, 룰러스틱 씨도 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하지 않았던 것, 사회생활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고생한다 생각하고 하면 돼요. 자격증도 없네요? 첫 번째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 건 본인에게 큰 흠이 될 거예요. 자격증도 없네요?”

“건축기사 필기까지만 합격했습니다.”

“하하. 실기가 어렵죠? 저도 실기 2번 떨어졌어요. 아, 그런데 OO대학교 나왔네. 공부 잘했네...”     

어처구니없는 나억대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이미 내 눈은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네, 당신 꼰대 맞습니다. 그리고 현장 상황에 따라 못 쉬는 건 이해해요. 그런데 왜 일하는 만큼 연봉은 안 주는 거죠? (당신 말대로 연봉이 억대라면) 당신의 연봉 10~20%만 부하 직원에게 양보하세요. 나중에 억대 연봉 말고 지금 그냥 좀 더 벌고 싶네요.’     


자격증 없는 건 인정했다. 다만 화가 났던 건 인테리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본인이 공부를 못했으면 본인이 공부를 안 했던 거지, 왜 싸잡아서 공부를 안 했다고 평가할까. 본인의 무식과 무례를 당당히 표현하는 부장의 모습이 참 한심했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실 텐데 고민해보시고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 실장은 나가는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연락할게요."


꼰대지옥으로부터 서둘러 탈출했다.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간만의 인테리어 회사 ‘탐사면접’이 마무리되었다. 작년에 본 1군 회사도 휴무를 보장받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2군 회사인 첫 번째 회사는 휴무가 보장되지 않았다. 이번에 면접을 본 A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휴무를 보장받는 노동환경을 원한다. 즉 워라밸이 보장되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 그 조건을 만족하는 인테리어 시공회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혹시나 있다면 알려달라.) 이렇게 가끔 보는 면접은 내게 다시 펜을 쥐게 하는 자극이 되어준다. 면접 경험을 마음속에 새기고 더 절실히 공부해야겠다.

* 참고 (시공능력 평가금액 기준)
- 1군: 700억 이상
- 2군: 210억 이상 700억 미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