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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ul 27. 2020

건축현장 언어능력시험 1급

현장에서 일본어가 사용되는 이유

*개인 경험을 토대로 한 글입니다*


“단도리하고 퇴근해.”

“문 와꾸도 함께 오는 건가요?”

“내일 공구리치는 날인데 비가 온답니다.”

“나라시까지 하면 5시 넘을 것 같아.”

“아시바 탈 때는 안전벨트 착용하고 다녀.”

“구라인더 날 하나 사다 줘.”  

"현장 내에서는 하이바 항시 착용해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현장에서 오가는 대화다. 현장의 먼지 휘날리는 풍경은 예상하고 이직했기 때문에 그리 이질적이지 않았다. 막상 나를 당황시킨 건 현장에서 오가는 대화였다. 외계어가 난무하는 현장의 언어들이 낯설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고 언어를 알아야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계어들을 익혀야만 했다. 도면을 들고서 바삐 뛰어다니는 사수에게 물었다. “와꾸가 뭐죠?” 시간에 쫓기는 작업자들을 붙잡고 귀찮게 했다. “하스리가 우리말로 뭐예요?” 친절하게 답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친절하게 답을 주던 사수와 작업자들은 내게 레이저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눈치를 살금살금 보며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결국 그 이후로는 휴식시간 짬을 내어 물어보거나 인터넷 선생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어가 현장에서 사용되는 이유

많은 건축 현장용어들을 보면 일본어가 다수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축역사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우리가 아는 한옥 형태의 주거와 초가집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서양의 현대건축기술의 영향을 받아 시멘트와 철을 주재료로 건축하기 시작한다. 시멘트를 사용하는 철근콘크리트 구조, 철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철골구조로 건물이 지어진다. 단층의 건축물이 주를 이뤘던 대한민국 땅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일본 관리자 관리 하에 일하면서 일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역사가 오늘, 2020년 7월의 현장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NO JAPAN!

외교적인 이유로 국내에 반일정서가 증가했고 그로 인해 일본 불매운동이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건축 현장은 어떨까? 최근 정세와 관계없이 일본말 사용을 지양하자는 움직임들이 일찌감치 있었다.

쪽바리도 아니고 한국말 써야지!

작업자들의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내심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는 일본 용어를 사용하는 작업자들이 많았다. 나는 현장관리인으로서 일본 용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바꾸어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면 작업자들과 소통할 때 대체해보기도 했다. 나름 고민을 실천하려고 시도했다. 애국자의 마음으로.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함께 일하는 현장소장과 사수가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또한 건축도 잘 모르는 젊은 놈이 현장용어(일본어) 사용하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작업자들도 있었다. 어쩌면 경력 없는 현장관리인을 따라 늘 사용했던 용어를 바꾸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늘 썼던 말을 바꾸는 일은 꽤나 귀찮고 신경 쓰였을 것이다.


작업을 지시하기 위하여, 일본어를 한국어로 설명하는 시간이 추가된다. 현장용어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비효율적이었다. 몇십 년을 사용했던 현장용어를 새로운 용어로 바꿔 사용하는 일은 쉬운 일도 아니었고 효율적인 일도 아니었다. 이렇다 보니 자존감은 버리고 자존심은 지키는 사람이 많았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애국자가 되기보다 효용성을 챙기는 능력자가 되기로 한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현장용어를 바꿔 사용하는 게 하나의 운동이라 생각했다. 나는 효율이 아닌 애국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언어에는 역사와 얼이 담겼다고 믿었다. 얼은 정신이다. 때문에 단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일본어를 한국어로 변환하여 사용해보니 시작이 어려웠지, 금방 익숙해졌다. 하스리는 할석, 덴조는 천장, 와꾸는 프레임(틀), 데모도는 조공, 공구리는 콘크리트. 하이바는 안전모. 이런 식으로 대체해서 사용했다. 이미 있는 단어들, 익숙하게 사용했던 단어들도 있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단도리. 단도리는 대체하기가 참 애매한 단어였다. 단속, 정리, 대비 등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허나 뭔가 아쉬웠다. 좀 더 적합한 대체어가 필요했다. 현장에서 '단도리'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용되는 범위도 넓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단도리’ 만큼 단도리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를 찾기 힘들었다. 단도리만큼은 단도리하지 못했다.


단도리는 건축현장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단어다. 바삐 돌아가는 건축현장 특성상, 간단하고 짧게 소통한다. “이대리, 3층 단도리 좀 해줘.” 이 말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단순히 청소 요청일 수도 있고 자재를 옮기기 위해 공간을 확보해달라는 뜻일 수도 있고 천정에 석고보드를 붙이기 위해 조명 위치를 표기해달라는 뜻일 수도 있다. 단열재 시공을 위해 요철을 제거하는 작업과 같은 바탕처리 작업을 요청했을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짧게 핵심을 담아 전달하고 또 그것을 이해하는 소통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공정에 대한 선지식이 있어야 하며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거시기를 거시기로 이해하는 능력, 단도리를 단도리로 소화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못 알아듣는다면 바보가 되고 초짜가 되는 거다.


신속하지만 불명확한 소통방식을 강요하는 현장

현장의 불명확한 소통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나만의 상상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책임 회피를 하기 위해 불명확한 소통방식을 택하는게 아닐까 상상도 해본다. 업무지시의 명확성은 조직의 효율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업무지시의 명확성은 말 혹은 글로 드러난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좀 더 원활한 업무체계를 위해서라도 명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소통하는 것이 효율성을 높일 것이다. 불명확한 소통방식으로 신속함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공기만 늘어나고 비용만 더욱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장관리인과 기술자들 모두 기술과 공정을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올바른 용어 사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업무효율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일본어에 물든 건축문화도 변화시킬 것이다.


※ 번외 편: 경량 목구조 이야기

목조주택 현장, 정확히 이야기하면 경량 목구조 현장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북미식 목조건축기술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현장에서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일이 안된다. 예를 들면, 경량 목구조에서 구조재의 규격은 인치 단위다. 2x6, 2x8, 2x10과 같이 mm가 아니라 인치 단위다. 2x6 (inch) 구조재는 38x140(mm)입니다. 이마저도 공칭 치수여서 실제 치수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또 하나의 예는 구조재의 간격이다. 간격은 16인치이다. 16inch=406.4mm. 보통 406mm로 이야기한다. 이러다 보니 사용하는 자도 다르다. inch, feet 자를 사용한다. 일반 인테리어와 건축 현장에서는 일본어가, 경량 목구조 현장에서는 영어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뭔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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