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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ul 19. 2020

현장관리인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현장관리인에 대한 Q&A

*개인 경험을 토대로 한 글입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건축사’와 ‘현장관리인’을 만날 수 있다. 건축가가 나오는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다. 손예진과 정우성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눈물뿜뿜한 멜로 영화다. 주인공 최철수(정우성)는 현장 시공자에서 현장소장 그리고 건축사 시험까지 합격하여 건축사가 된다. 내게 건축현장으로 오게 된 동기부여가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일부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이 외에 건축 관련 직업을 참고할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들은 다음과 같다.


<건축학개론>의 주인공 승민(엄태웅): 건축사

<신사의 품격> 김도진(장동건): 건축사

<신사의 품격> 임태산(김수로): 현장관리인(현장소장)

<나의 아저씨> 박동훈(이선균): 건축구조기술사


건축사와 현장관리인하는 

집을 지을 때 건축사와 현장관리인의 일은 뭐가 다를까? 건축사는 토지 조건에 맞춰 건축물을 기획/설계한다. 구조/기능/미의 조건을 충족하는 ‘도면’을 그린다. 재료도 결정한다. 이렇게 도면이 완성되면 현장관리인은 그 도면을 받아 집을 실제로 짓는다. 시공에 관한 재정/노무/일정/품질 등을 총괄한다. 집을 짓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자재의 비용은 얼마가 될지, 자재는 어디에 발주하고 어떻게 받을 것인지, 함께 집을 짓는데 필요한 기술자들은 몇 명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다.     

현장관리인으로 일하기 전에 온라인 서점에서 일을 했었다. 당시, 가족을 비롯해 친구들에게 내 일을 소개할 때 ‘OOOO에 다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장관리인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회사 이름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니, 회사 이름으로는 친구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대기업이나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 다니는 게 나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간편하다는 걸.) 그동안 자주 들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다. 이 Q&A를 통해 현장관리인이라는 직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Q. 너 돈 많이 받아?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연봉이 높다. 그리고 직급이 높을수록 높다. 그러니까 케바케. 뻔한 대답이지만 이게 사실이다. 그래도 숫자를 사용해 연봉 이야기를 해보자면 중견기업과 대기업 신입사원은 3천만 원 초반에서 4천만 원 초반까지 다양하게 받는다. 소규모 종합건설회사 혹은 인테리어 회사의 경우 3천만 원 초반 또는 그 이하다. 특히 인테리어 회사 신입직원은 연봉 2천만 원 중반 정도다. 그나마 설계직과 비교해보면 나은 편이다.


나는 실내건축업 도급순위 30위 내 회사, 단독주택 건축회사, 소규모 집수리회사 총 세 군데를 거쳤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교하면 적은 연봉을 받았다. 연봉이 적은 편이었지만 현장관리직에게는 나름 장점이 있다. 식대가 지출되지 않았다. 주로 실외에서 일하기 때문에 커피나 음료와 같은 간식비도 회사에서 지원되었다. 작업화, 작업복도 지급되었고 자차가 있다면 유류비도 제공되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차량이 지급되어 교통비도 따로 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현장관리인의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Q. 너 그럼 노가다 하는 거야? (이런 말, 사실 잘못됐다) 

‘몸 노동’을 하느냐에 대해 묻는다면 YES. 그러면 직접 자재를 운반하고 시공도 하느냐 묻는다면 대답하기 난감하다. 원칙적으로는 No. 하지만 상황에 따라 시멘트 포대를 나르기도 하고 벽돌을 옮기기도 한다. ‘상황에 따른다’라는 말을 참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간단한 시공도 한다. 못을 제거하는 단순 요철 제거작업은 물론이고 때로는 기술을 요하는 작업들도 한다. 실제로 단독주택을 지을 당시에 보일러함 거푸집을 만들기도 했고 간단한 우수관 교체 작업도 진행했다.


Q. 그럼 막 도면도 그리고 그래?

NO. 설계나 디자인의 의미로 도면을 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도면을 그리기도 한다. 설계도면에 잘 나와 있지 않은 부분들을 보완하는 의미로 도면을 그린다. 현장 시공기술자(이하, 기술자)에게 작업을 지시할 때 세부적인 도면을 그릴 필요가 있다. 설계자가 그린 도면을 보고서 기술자가 단번에 의도를 파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현장 시공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한 번의 ‘통번역’ 작업을 거치는 것이다. 도면은 건축의 언어와 같다. 현장관리인은 설계자와 직접 시공하는 기술자 사이에서 ‘통역’을 한다. 물론 구두로 설명하는 현장관리인들도 많다. 하지만 그림(도면)이 이해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정확한 업무 지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현장관리인들이 손이나 간단한 캐드 작업으로 도면을 종종 그린다.



Q. 더울 땐 더운 데서, 추울 땐 추운 데서 일하겠네...

YES. 왜냐하면 보통 현장에는 에어컨이나 히터가 없다. 선풍기 정도만 있다. 겨울에는 핫팩이 필수다. 특히 인테리어 현장이 아니라 신축 현장이라면 지붕이 없기 때문에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춥다.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작업복을 지급해준다. 옷장에 첫 회사에서 받은 거위털 패딩과 쿨링 반팔 티셔츠가 여러 장 있다. 그래도 덥고 그래도 춥다.

    

Q. 남초 직업인가?

YES. 남초는 맞지만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첫 사수도 여성이었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얻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사수였던 기사가 6층 높이의 비계(흔히 아시바로 불리는 것) 위를 거닐며 꼼꼼히 점검했던 모습은 신입기사인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나의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먼지 휘날리는 현장에서 청소를 비롯한 현장 정리도 함께 했다. 자재를 나르는 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장의 건축가

건축가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건축할 때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며 감독하는 사람. 한 번쯤 거리에서 OOO 건축사사무소라는 간판을 봤을 것이다. 건축사사무소라는 이름은 건축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이런 건축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을 우리는 건축가라고 부른다. 다소 나의 무리한 바람일 수 있으나 건축현장에서 시공 과정을 감독하는 ‘현장관리인’도 건축가로 불리었으면 한다. 품질을 ‘계획’하는 사람은 설계자이지만 품질을 ‘완성’하는 사람은 현장관리인이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한 땀 한 땀 집을 완성해가는 현장관리인을 나는 ‘현장의 건축가’라고 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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