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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ul 05. 2020

구두를 벗어던지고 안전화를 신은 새내기 현장관리인

온라인 서점 직원이 건축현장으로 달려간 이유

책이 좋아서 입사했습니다!

나는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온라인 서점에 입사했다. 책을 좋아한단 이유로. 운이 좋았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홍보용 신간도서를 가장 먼저 접하고 맘껏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내게 그곳은 천국이었다. 월급도 받고 좋아하는 책도 맘껏 읽을 수 있었다. 대학 때처럼은 아니었지만 사내 동호회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아침 영어회화 스터디와 농구 동호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나자 여느 직장인들처럼 슬럼프가 찾아왔다.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데도 불구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보다는 알 수 없는 무기력감과 허무함을 느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 일이 나와 궁합이 맞는지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의 문제인가. 나의 문제인가. 주변에서 2년은 버텨보라고 했다. 이왕 버티기로 마음먹은 거, 성실히 일하되 퇴근 후 삶의 질을 높여보기로 했다. 평일 저녁에는 복싱장에 다녔고 주말에는 가구 공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공방에서 가구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가구 만드는 일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지난한 일이었다. 재단, 조립, 샌딩, 도색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반복하는 일이 지루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간 '순삭'. 그리고 목공 작업이 마무리되면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가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보람찼다. 만들어진 의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처럼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취미가 '일'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가구를 만드는 재미를 느꼈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였다. 취미가 일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데 고민이 되었다. 취미로 남겨둘 것인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낼 것인가.

이직으로 인한 기회비용 그리고 행여나 이 모험의 실패로 떠안아야 할 리스크들을 예상해보았다.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다. 합리적인 퇴사 절차를 밟는 중이라며 스스로를 확신했다.

즐겁게 공방을 다닌 지는 1년, 회사는 2년을 채웠다.


사원증을 반납하다.

결국 나는 사원증을 반납했다.

'나는 도피하는 게 아니야. 행복하기 위해서 이 곳을 떠나는 거야.'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신뢰하기 위해 이직을 하는 이유와 일에 대한 가치를 구체화시켜야만 했다.


첫째, 영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몰입해서 행복하게 일하자.

사람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일주일은 168시간. 우리는 일주일에 112시간(1일 8시간 기준) 깨어있다. 보통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적게는 주 40시간, 많게는 주 52시간 일한다. 적게는 1/3, 많게는 1/2를 '직장'에 할애한다.


둘째, 인공지능 시대에 나만의 '기술'을 갖자.

요즘 카페와 음식점에 가면 출입구 옆에 '키오스크' 녀석이 서있다. 그리고 주문을 받고 결제까지.

'매일 실수하고 자책하는 내 자리는 사라지겠구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알파고 녀석이 내 자리를 대체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인가?


셋째,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의식주와 관련된 일을 하자.

온라인 서점 관련 직종은 서울에서만 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의식주는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다. 건축이라면 어딜 가서라도 밥값은 벌겠다고 생각했다. 깡시골에 가더라도 집 짓는 풍경은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아, 그런데 왜 가구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갑자기 건축이냐고?

막상 가구 만드는 일을 알아보니 이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구 만드는 회사는 대부분 근무여건이 열악했다. 급여도 짜고 대부분의 공장 또는 공방은 당시 서울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출근이 불가능한 위치였다. 합리화였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이전부터 집짓기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 짓는 걸 취미로 할 수 없으니 가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가능만 하다면 '건축업계로 취업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겠다' 생각했다. 시골에도 건설회사와 집수리업체는 있다. 어딜 가든 굶어 죽진 않겠구나. 또한, 가구 하나의 단가보다 집 한 채의 단가가 훨씬 높다. 물론 이윤도 높다. 근무조건도 나을 테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하더라도 외연이 넓은 건축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건축/인테리어 회사는 서울에 넘쳤다.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몇 군데 면접을 봤고 건축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이전에 받던 연봉보다는 적었지만 동종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회사에서는 2년의 사회생활 그리고 건축에 대한 열정을 높게 샀던 것 같다.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서 먼지가 휘날리는 건축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PC 앞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서 줄자를 손에 쥐었다. 매일 신던 단화는 신발장에 넣어두고 투박하고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현장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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