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누렁이>를 통해 육식 사회를 돌아보다
*주의! 해당 기사엔 다큐멘터리 <누렁이>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한 잔인한 사진과 묘사가 있을 수 있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좋아하니까 개를 키우죠… 개는 똥개! 똥개!"
다큐멘터리 <누렁이>에 나온 개농장 주인은 키우는 개와 식용견을 구분했다. 반려견과 식용견은 정말 따로 있는 걸까. 올해 서울환경영화제(6.3~6.9)에서도 상영되었던 이 작품은 지난 6월 10일 유튜브를 통해서도 공개됐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제작자이기도 한 케빈 브라이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제목만 보면 누렁이와 인간 간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 혹은 따뜻한 우정 이야기를 상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렁이>는 개농장과 보신탕 산업의 진실을 알리는 탐사 다큐멘터리다. 개농장의 사육환경, 보신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보신탕 조리 과정, 사료 제조 과정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 결국 카메라 앵글 안에는 개의 도살 장면까지 담겼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충청대학 식품영양학부 안용근 교수는 개고기의 장점을 설명하며 직접 개를 먹는 모습을 선보였다. 일종의 보신탕 '먹방'이었다. 개의 몸통이 통째로 커다란 냄비에 담겼다. 멀리서 보면 잠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숨 쉬지 않는 것만 빼고는 살아있을 때 그대로다. 잠시 뒤 요리한 보신탕이 나왔고 안 교수와 안 교수의 처남이 함께 보신탕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은 개를 먹고 개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
사람은 개를 먹는다. 개는 무엇을 먹을까? 개는 사람이 버린 음식물을 먹는다.
"이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해.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고 잔반이야.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을 갈아서 급여!"
"그러면 이 음식이 어디서 오나요?"
"학교 급식."
다큐 속 개농장 주인은 수거된 잔반을 보여주면서 "거의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이며 "이북으로 가면 호텔 음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도서 <고기로 태어나서>에서도 일명 '짬밥'이라고 불리는 음식물 쓰레기 이야기가 나온다. 개농장은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예식장, 일반음식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한다. 기관과 음식점에서는 싼값에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개농장에서는 사료를 공짜로 얻는다. 윈윈(win-win)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에서는 이를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면에 존재하는 개는 자본의 논리에 끼어들 틈이 없는 걸까.
보신탕 때문에 도살되는 개는 매년 150만 마리
개는 어떻게 도살될까? 다큐멘터리 <누렁이> 촬영진은 대한육견협회의 초청을 받아 개 도살장에 방문했다.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비좁은 철창 안에 개가 납작 엎드렸다. 도살하는 직원이 전기봉을 들고 움직이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전기봉이 몸에 닿자, 신체에 정확히 닿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개는 찰나의 비명을 질렀다.
"고통 없이, 고통 없이."
전기봉을 꽉 물더니 비명과 함께 몸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도살장 직원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고통 없이 개가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35초 후 개는 별 미동 없이, 소리 없이, 하지만 눈은 뜬 채로 고개를 떨궜다.
보신탕 때문에 도살되는 개는 1년에 몇 마리일까?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은 2천 마리에서 3만 마리까지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
다큐에 출연한 최영인 대한육견협회 전 대표에 따르면 보신탕 때문에 도살되는 개는 1년에 150만 마리 이상이다. 한창 개고기 수요가 많을 때는 350만 마리였다고 한다. 매년 보신탕 때문에 죽는 개가 150만 마리라는 사실을 접한 시민들은 인터뷰 도중 할 말을 잃었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전히 사육하고 도살하고 판매하고 먹는 우리 사회
식육견 관련 산업은 사양길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개를 사육하고 도살하고 판매하고 먹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주변을 돌아보면 보신탕을 먹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눈치 보는 정도의 문화는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는 반려동물 문화나 해외의 비판이 한 몫 했을 듯하다.
대신 우리는 복날에 또 다른 보양식을 먹는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복날 연관 키워드 1위는 '보양식(72.6%)'이다. 무더운 복날, 음식을 통해 지친 몸의 기력을 회복하겠단 의도일 것이다. 삼계탕부터 곰탕 등 그 종류도 훨씬 다채로워졌다. 개를 먹는 문화는 이상하지만 동물을 먹는 '육식 문화'는 너무 당연해졌다. 복날이 돌아올 때마다 많은 이들은 각종 보양식 인증샷을 SNS에 전시하고 기업들은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보양식을 기부하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한다.
<누렁이>는 공개 두 달이 채 안 되어 47만 뷰를 기록했는데, 사각 화면에 음지에 가려진 식육견 이야기를 옮겨온 이 작품의 등장은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그나마 개는 인간과 친한 동물이라는 이유로 카메라 앵글에 들어왔고 이토록 많은 주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농림축산식품검역본부 도축실적에 따르면, 2020년 소는 88만 6천 마리, 돼지는 1832만 9천 마리, 닭은 9억 8617만 3천 마리, 오리는 6702만 1천 마리가 도축되었다. 도축 전에 질병으로 폐사하거나 도태된 생명은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물고기라고 통칭하는 수많은 종의 '물살이'의 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물살이는 사육장과 도살장의 경계마저 모호하다.
복날이 있는 7월에는 닭의 도축실적이 치솟는다. 삼계탕 재료로 어린 닭이 많이 도살되기 때문이다. 2020년 6월 삼계용 닭은 1811만 8572마리가 도살되었는데 7월에는 2932만 5378마리 도살되었다. 고작 한 달 사이에 61.9%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삼계용 닭은 지육 기준 450g~650g, 5,6호의 닭이다. 생후 30일이 안 된 닭, 병아리에 가까운 닭이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삶을 사는 닭들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계사에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투여 받는다. 동료들의 오물을 뒤집어쓰는 건 다반사다. 성장호르몬에 불어나는 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도축하기 전에 각종 질병 때문에 계사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산다는 말보다는 매일 죽어간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다큐멘터리는 70분으로 끝나지만 앞서 언급했듯 현실 세계의 고통과 학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영화 <설국열차>에 마지막 칸이 하나 더 추가된다면, 그곳은 비인간동물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고통과 학살의 열차에 오른다. 우리는 언제 이 열차를 멈출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