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은 지역 특산품이나 로컬푸드를 이용해 기존에 맛볼 수 없었던 신메뉴를 개발하여 휴게소, 철도역, 공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만남의 장소에서 교통 이용객들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지역 특산품이나 로컬푸드를 홍보하는 좋은 의도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백종원씨가 출연하여 음식과 식자재 관련 풍부한 상식을 나누고 특유의 구수한 말투로 정감 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수컷 얼룩소=육우
지난 12일 <맛남의 광장> 86회에서는 육우를 소개했다. 요리법과 판매까지, 누가 봐도 육우 홍보 방송 같았다. 육우라는 말을 처음 듣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우유를 생산하는 소를 젖소라고 부른다.
(가만 생각해보면 참 기이한 단어다. 젖소는 젖을 짤 수 있는 암컷 소만을 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하, 암컷 얼룩소로 칭한다)
암컷 얼룩소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출산해야 젖이 나오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난 송아지는 성별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암송아지는 엄마의 운명을 따라 우유 생산과 출산을 반복하게 되고 수송아지는 소고기 생산을 위해 육우로 사육된다. 수컷 홀스타인종이 바로 육우다. 암컷은 인간이 먹는 우유와 송아지를 생산하고 수컷은 고기가 된다.
"육우는 한우에 비해 육질이 연하고 지방이 적어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습니다."
육우는 맛과 품질을 위해 사육단계에서 거세된다. 홀스타인종 육우의 사육 기간은 평균 20개월인데 평균 사육 기간이 31개월인 한우보다 성장이 빠르다. 육우 농가는 사육 기간이 짧은 점을 홍보에 이용한다.
(육우(肉牛)... 한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고기소. 이름에서부터 고기가 될 운명을 이름에 새기면서 태어난다. 이하, 수컷 얼룩소로 칭한다)
젖소. 육우. 동물을 부르는 이름에서 우리가 어떻게 동물을 인식하고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가감없이 드러난다.
평생 임신, 출산과 착유를 반복하는 삶, 동물이 아니라 기계다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송아지를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기를 먹는 것이 동물을 먹는다는 행위임을 늘 잊고 산다. 게다가 수컷 얼룩소를 먹는 행위는 단순히 수컷 얼룩소를 먹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수컷 얼룩소 산업은 낙농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유를 마신다는 것과 소고기를 먹는 것, 둘은 행위 자체만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산업의 구조적인 면을 본다면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암컷 얼룩소가 수컷 얼룩소를 낳기 때문이다.
암컷 얼룩소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인공수정을 통한 '강제' 임신과 출산이다. 2020년 3월 1일 우유자조금(우유소비를 촉진활동을 전개하는 단체)은 "일반적으로 젖소에게 행하는 인공수정은 오히려 동물복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인공수정이 축산업에 도입된 계기는 생산의 목적이 아니라 질병 예방 차원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강제 임신과 출산에 동물복지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가축으로 사육되는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 얼룩소는 이름이 없다. '002 0473 2360 5' 숫자의 삶을 산다. 섭취 사료량, 사육기간, 착유량, 도축 후 부위별 무게 등 모든 생애가 숫자로만 치환된다. 이름 없는 숫자의 삶이다. 동물과 관련된 것들을 설명할 때 '효율적',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들이 얼마나 끔찍한 진실을 기술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유를 마시면서 단 한번이라도 얼룩소의 생애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암컷 얼룩소가 태어나면 초산 착유 전 29개월 동안 성장하면서 인공수정을 통해 강제로 임신된다. 출산 이후 40일 간은 휴식기를 거치고 다시 인공수정 임신이 강제된다. 동시에 출산 이후 얼룩소는 400일 간 매일 착유 된다. 다만 임신한 얼룩소라면 출산 이전 2~3개월은 젖을 짜지 않는 건유 기간으로 지정되어 출산 이전까지 착유 되지 않는다. 동물이 아니라 기계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얼룩소는 착유 되다가 몸이 다치거나 착유량이 적어지면 도살된다. 실제로 도축장에서는 다친 소들이 도살장에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생 임신과 출산, 착유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고기가 된다. (관련 글: 죽어서 오는 소는 돈이 되지 않는다)
'맛'만이 남은 씁쓸한 현실
'육우의 광장'. <맛남의 광장>에서 육우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다. 인간에게 '맛'만이 남은 이 현실이 씁쓸하다. 맛남의 광장뿐인가. 먹방과 요리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육식 위주다. 피와 비명은 사라지고 사체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둔갑된다.
지난 2월 12일 <맛있는 녀석들>에서는 채식 특집편(312회분)을 방송했다. 선례를 남긴 것 같아 기쁘고 반가웠다. 방송 프로그램이 인간동물만을 위한 '맛'만을 만족시키는 장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땅을 함께 딛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더불어 고민하고 만나는 '만남의 광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 서문교, 2021, 젖소의 생애주기를 기반으로 한 목장 단위 착유량 예측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