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화) 오전 10시, 홈리스행동과 텐트촌 주민 일동은 용산역 홈리스 텐트촌(이하 텐트촌)에서 주거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는 보행교 공사 과정에서 텐트촌 주민들의 적절한 주거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졸속 처리하려는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용산역 3번 출구로 나가려면 흔히 구름다리라고 불리는 보행교를 지나가야만 한다. 3번 출구 바로 옆에는 30층을 훌쩍 넘는 서울 드래곤시티 호텔(이하 SDC)이 있다. 그리고 보행교 아래에는 홈리스 텐트촌이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텐트촌은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과 같이 열악한 주거 환경이다. 냉난방 시설은 물론 위생시설이나 주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용산역 홈리스 텐트촌은 2000년대 중반 무렵 노숙인들이 모여 비닐, 천막 등으로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곳이다.
'퇴거 날벼락' 맞은 텐트촌 주민들
이날 기자회견은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이하 이 활동가)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텐트촌 주민들과 홈리스 행동 활동가들, 설혜영 정의당 용산구 의원(이하 설 의원),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이 참석했다.
텐트촌 주민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첫째, 적절한 주거 대안 없이 이뤄진 퇴거 예고를 즉시 중단하도록 조치할 것.
둘째, 민간 시행사와 시공사가 아닌 용산구청이 직접 나서서 주거 및 이주대책을 마련할 것.
셋째, 공사 완료 후 모든 텐트촌 동료 주민들의 거주 안정성 보장을 약속할 것.
텐트촌 주민은 왜 이러한 세 가지 사항을 요구한 걸까? 지난 3월 2일, '용산역-드래곤시티호텔 간 공중 보행교량 신설사업'의 공사 시행이 결정되었다. 이로 인해 텐트촌 주민 일부는 "오는 15일까지 공사구간 내 텐트들을 치워줘야 한다"라고 구두로만 전달받았다. 졸속 처리하려는 시공업체 측의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더군다나 이 소식을 전달한 이의 신분이나 성명을 명확히 밝히지 알 수 없어 더욱 미심쩍다. 홈리스행동과 주민 일동은 시공사 측 관계자로 추정하고 있는 상태다.
설 의원은 용산구청이 "(시공)업체에 공사구간에 해당하는 천막 3개 동의 이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전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홈리스행동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후로 용산구는 손을 놓고 있는 상태이고 텐트촌 주민들은 대책 마련과 관련된 내용을 고지받지 못한 상황이다. 텐트촌 초입 게시판에 '공사구간 지장가옥 이주협의'라는 글귀만을 남기고 간 게 전부인데 신분이나 성명을 전혀 남기지 않았기에 협의 대상과 내용에 관해서 전달받은 바가 없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홈리스 행동 안형진 활동가는 "현재 주민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텐트촌 내 다른 구역으로 이전하는 것과 노숙인 임시주거지원을 통해 고시원이나 쪽방 같은 거처로 이전하는 것뿐이다"라며 "유사시에 거절할 수 없는 선택이 될지언정 이는 온전한 주거의 수평이동이라고 말하기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공사구간 내 주민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 수립과는 별개로 공사 완료 후 모든 텐트촌 주민들의 거주 안정성 보장을 위한 사전 조치"를 요구했고 "2017년 말 호텔타운 개장과 함께 기존 공중 보행교의 관리를 SDC 측이 맡게 되면서 공중 보행교를 잠자리로 이용하던 홈리스들이 아무런 조치 없이 퇴거된 바가 있는데 향후 텐트촌 주민들의 거주 안정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하순철 텐트촌 공사구간 내 주민 대표자는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10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제일 막내입니다. 갑자기 (텐트촌에서)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로 가냐고요"라고 호소했다.
사회를 본 이 활동가는 "여기 있는 텐트는 물리적으로 10초 만에도 부술 수 있는 설치물일지 모르겠지만 (하순철 주민이) 말씀하셨듯이 짧게는 5-6년, 길게는 20년 이상 이곳에 뿌리를 내려온 이분들의 삶이 바로 텐트입니다"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갑자기 시작된 공사에 이 왜소한 텐트촌마저도 빼앗길, 내몰릴 처지에 있다는 것이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용산구청은 이 모든 것을 시공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라면서 "용산구 의원으로서 굉장히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발언 말미에는 "의원으로서 이 분(주민)들과 함께 이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라며 결의를 다졌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텐트촌 주민과 활동가들은 지금 사태를 바라보며 '2017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다. 헌법 35조 1항과 3항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만약 텐트촌 주민의 주거권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헌법에서 말하는 주거권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것이다.
국공유지는 누구의 땅인가. 텐트촌 지역은 용산 정비창 부지에 포함되는 국공유지. 오세훈 시장이 '용산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고 공언한 부지이기도 하지만, 2020년 국토부에서 주택공급대책 일환으로 1만 호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한 부지이다. 이곳에 주택이 들어선다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공급되어야 할까. 우리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