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 Aug 19. 2022

여름 최고의 보양식, 콩국수와 복숭아

숨만 쉬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여름을 반가워할 이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여름만의 매력이 있다. 푸른 바다에서 수영과 서핑하기. 바위와 계곡물이 부딪치는 시원한 음악을 들으며 수박 한 입 베어 물기. 여름이 아니어도 가능하지만 여름이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는 질문에는 뜸을 들였다. 가끔은 묻지도 않은 가장 싫어하는 여름을 답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지나간 여름이 그립고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을 기다리게 된다. 수영이나 서핑과 같은 특별한 취미가 생겼기 때문은 아니다. 바로 여름에야만 제맛을 즐길 수 있는 콩국수와 복숭아가 있기 때문이다.



만인을 위한 여름 최고 보양식 '콩국수'


탕수육 찍먹파와 부먹파가 있듯 콩국수도 소금파와 설탕파가 있다. 찍먹파와 부먹파는 파벌 갈등을 일으키는 반면 콩국수는 그럴 염려가 없다. 각자 그릇에 먹기 때문에 소금파는 설탕파를, 설탕파는 소금파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이번 여름 수많은 콩국수를 즐겼다. 콩국수를 맛있게 먹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콩국수가 식탁에 차려지면 콩국물을 세 번 떠먹는다. 보통 별점은 이때 결정된다. 그리고 면을 호로록 먹으면서 콩국수 맛을 즐긴다. 찬 음식이다 보니 소화가 잘 되도록 더 많이 씹어주는 게 좋다. 면을 다 먹은 후 국물을 마신다. 보양은 면이 아니라 콩국물이 해주기 때문에 꼭 국물을 다 마셔야만 한다. 설탕 혹은 소금을 넣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면 인연인 콩국수를 만난 것이고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마시면 된다. 무더운 여름날 땀을 낸 후라면 훨씬 더 맛난 콩국수를 즐길 수 있다.


콩국수 만드는 법은 꽤 간단해 보인다. 콩물과 면만 있으면 되니까. 어쩌면 콩물을 어떻게 만드는지가 전부일 수 있겠다. 맛집마다 콩국수를 만드는 방법은 일급비밀에 해당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지만, 요즘에는 집에서도 쉽게 콩국수를 해 먹을 수 있다. 마트에 가면 콩국물을 파는데 원하는 식감의 면과 함께 조리해서 먹으면 된다.


토마토를 듬뿍 넣어 만든 콩국수


개인적으로 한살림 콩국물을 추천한다. 면은 소면, 중면, 칼국수면 모두 잘 어울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면을 선호한다. 소면 사이사이 밴 콩국물 때문에 콩국수를 더욱 진하게 즐기는 느낌이다. 식당마다 들어가는 재료는 차이를 보이는데 보통 수분 함량이 높은 채 썬 오이가 들어간다. 이 또한 취향이 갈릴 텐데 오이가 수분을 채워주기도 하고 아삭한 식감과 깔끔한 맛이 텁텁할 수 있는 콩국수와 잘 조화를 이룬다. 나는 집에서 콩국수를 해 먹을 땐 토마토와 노란색 파프리카를 넣는다. 영양과 식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채색의 콩국물 위에 초록, 빨강, 노랑이 올라가 있는 화려한 콩국수를 보면 콩국수를 입에도 대기 전에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김밥집에서도, 칼국수집에서도, 고깃집에서도, 백반집에서도 심지어 중식집에서도 여름 계절 메뉴로 콩국수를 판다. 식당 내부 벽면에 걸린 메뉴판 옆에 정성스럽게 쓰인 손글씨 '여름 별미 콩국수'를 보게 되면 '콩국수 하나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직까지는 삼계탕과 같은 음식이 여전히 여름 보양식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콩국수는 이미 보양식 대열에 들어섰다고 본다. 콩국수는 채식주의자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물론 채식주의자는 콩국수에 계란이 들어가는지 반드시 확인해야만 한다. 간혹 콩국수에 계란 반 덩이를 올려 주는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콩에는 단백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콩을 우려낸 국물로 만든 음식이니 단백질 부족 걱정을 할 염려도 없다. 채식주의자가 먹기에도 안성맞춤인 여름 별미. 이 정도면 만인을 위한 여름 보양식 아닌가.


여름을 그리워지게 만드는 과일 '복숭아'


콩국수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지만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 내게 올여름 최고의 여름 후식은 복숭아였다. 복숭아 농사를 짓는 친구들을 통해 주문하기도 하고 근처 청과물 가게나 마트에서 복숭아 박스를 집으로 꾸준히 날랐다.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과일장수 복숭아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보드카 토닉과 복숭아


그나저나 왜 맛있는 음식은 이리도 취향이 갈리는 걸까. 복숭아의 분홍빛 비극. 콩국수의 설탕파와 소금파가 갈린 것처럼, 복숭아도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딱복파와 물렁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물복파로 갈린다. 나는 딱복파고 아내는 물복파다. 콩국수를 먹을 때와는 달리 마트나 시장에 들를 때마다 복숭아를 앞에 두고 눈치 싸움을 하기도 한다. 복숭아는 한 박스에 하나의 품종만 담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사 오든 집 안의 복숭아는 금방 동이 난다. 이를 분홍빛 비극의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은 당도 체크가 되는 투명 사회에 살고 있다. 과일 포장지에는 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Brix'라는 용어가 적혀 있는데 당도의 단위다. 100g당 1g의 당이 들어 있으면 1 brix다. 즉 11 brix는 100g 단위 11g의 당이 함유되어 있다는 뜻이다. 보통 당도 11 brix 이상이면 품질이 좋은 복숭아로 평가된다.


올해는 복숭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단 과육의 색깔에 따라 백도와 황도로 나뉘고 과육 식감에 따라 물복과 딱복으로 구분된다. 이를 부르는 품종명이 있는데 금적, 대명, 단금도, 조생엘바트, 유명 등 다양한 복숭아 품종이 있다. 단맛만 느껴지는 품종도 있고 약간의 산미가 있는 품종도 있다.


한편으론 이 땅에 사라진 복숭아 맛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아마도 현존하는 복숭아는 상품으로써 복숭아로 최적화된 변형 품종이 아닐까? 천차만별인 복숭아를 천편일률적인 맛으로 만들고 그 안에 인간의 미각을 가둔 것만 같다. 자연에서 난 과일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표준화된 과일을 먹고 있는 건 아닐까. 잘못 고른 복숭아의 씁쓸함보다 표준화된 맛에 길들여진 내 모습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간혹 복숭아에서 애벌레가 나오곤 하는데 이는 복숭아유리나방의 애벌레라고 한다. 나는 오히려 '11 brix' 도장 찍힌 복숭아보다는 과육 한편에 자리를 잡은 애벌레가 나온 복숭아에 애정이 간다. 반가워, 애벌레.  . 애벌레는   풀숲에 풀어준다. 누군가는 애벌레가 발견된 복숭아를 보며 병충해에 소홀한 농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먹을만한 복숭아니까 벌레가 들어가서 살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그릇을 넓혀본다. 이렇게 생각하니 복숭아를 나눠먹은 듯한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어찌 됐건 올여름 언제나 내 마음속 메뉴판 첫 장은 콩국수와 복숭아였다. 무더위 끝자락, 여름의 바짓가랑이 붙잡고서 콩국수 한그릇 후 복숭아 한 덩이 어떨까. 콩국수와 복숭아를 먹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이번 여름이 그리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착취 없는 설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