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물탱크에 쌓인 개의 사체 그리고 통곡하는 활동가와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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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동물권단체 케어는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한 시민이 지인의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도중 수상한 집을 발견했고 집 안에 강아지 사체가 사방에 널려 있는 걸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양평군 한 마을 구옥에서 1000여 구(동물권단체 케어 집계 기준)가 넘는 개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날 필자도 불법개농장 철폐 전문 조직 와치독 카톡방을 통해서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다음날인 5일, 자원 활동가로서 케어 활동가와 동행해 현장 취재를 했다(케어는 4~6일 모두 현장 활동을 나갔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살짝 불었을 뿐인데, 악취가 코끝을 스쳤다. 당시 양평경찰서, 과학수사대, 양평군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고 과학수사대는 폴리스라인을 쳐두고서 사체를 비롯해 물품을 수거 중이었다. 조용한 마을에 경찰차 3대가 출동했고 인근 주민들도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도살장도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개 사체 1000여 구가 발견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70대 남성 A씨는 생계를 위해 한 명(命)당(이 글에선 동물을 셀 때 쓰는 '마리'가 아닌 하나의 생명을 뜻하는 '명'을 단위로 씁니다.) 만 원을 받고서 개인 가정집에서 사정상 기르지 못하는 개를 한두 명씩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케어 박소연 활동가는 사체 수를 비롯해 현장의 정황이 수상쩍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번식장에서 사용하는 캔넬들이 다수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푸들과 같은 특정 품종견이 사체로 많이 발견된 것을 미루어보아 단순히 개인 가정집에서만 받은 건 아니라고 추측했다.
박소연 활동가가 미심쩍었던 부분에 관해 A씨를 지속적으로 추궁했고, 그는 전문 번식장으로부터 개를 받아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는 A씨의 휴대전화에서 'OO애견'이라고 적힌 전화번호부를 발견하면서 확인되었다.
번식장의 개는 번식을 위해 지속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하지만 10세 정도에 이르면 급격히 번식 능력이 떨어지기에, 번식장 입장에서는 쓸모가 없어진다. 상품성이 떨어지고, 번식장 업주에게는 사료만 축내는 노령견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A씨는 번식장으로부터 이런 개를 지속적으로 받아오며 돈을 받은 것이다.
A씨는 일반 도살장과는 달리 개를 굶겨 죽였다. 케이지에 넣어뒀다가 굶어 죽으면, 성인 키 허리 정도 오는 물탱크에다가 쌓은 것이다. 사체가 담긴 물탱크에서는 악취가 흘러나왔다. 겹겹이 쌓인 사체를 본 현장의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통곡하기도 했다. 아랫마을 이웃 주민이 왜 이런 사람이 여기에 살도록 내버려 뒀냐며 다른 주민을 나무라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장 내부 마당과 방에 있는 케이지에도 죽은 사체들이 있었고, 오래된 사체들은 땅바닥에 들러붙어 카펫 같은 형태로 변해 있었다. 몇몇의 사체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갈비뼈의 형체만 보였다. 그동안 A씨는 만 원을 받고 골칫덩이 개를 '처리'해준 셈이다.
동물학대 사건,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
양평경찰서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A씨를 체포하여 수사 중이다. 수사가 끝나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이 사건은 동물보호법 8조 1항에 따라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1000여 명의 생명체를 굶겨 죽인 범죄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의 벌금만으로 처벌하는 것이 충분한가? 사실 국내에서는 이마저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각종 동물학대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다는 비판이 있다.
생계를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해선 안 된다. 피해자가 '비인간동물'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만약 물탱크통에 담긴 게 개의 사체가 아니라 사람의 사체라면, 이 정도 처벌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펫산업, 사육 포기 동물인수제도 등 근본적인 제도적 변화 필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동물학대 범죄자들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러한 범죄 사건을 단순히 동물학대 범죄자들의 개인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 된다. 번식장이 왜 존재하는가? 번식장은 새끼를 낳고 팔기 위해 존재한다. 번식장에서 새로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은 펫숍으로 간다. 지금 우리가 키우거나 함께 사는 개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진행한 '2021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반려동물 양육자의 약 20% 정도가 펫숍에서 구입하고, 약 50% 정도는 지인에게 무료로 분양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5명 중 1명은 펫숍에서 함께 살 반려동물을 구매하는 것이다.
왜 1000여 구가 넘는 사체 중 대다수가 푸들과 같은 품종견이었을까? 이는 예쁜 동물, 상품화된 동물을 찾는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 것과도 같다. 번식장, 경매장, 펫숍, 도살장 등으로 이어지는 펫산업의 착취 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박소연 활동가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이 펫산업의 문제점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50만 원을 주고 펫숍에서 푸들을 사는 이들이 만원을 받고 푸들을 아사시킨 A씨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이번 일과 같은 잔혹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동물을 사지 않아야 하고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동물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를 엄벌에 처해야만 한다.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등록제를 시행하여 모든 반려동물들의 이력을 추적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동물을 키우고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생명체와 함께 사는 책임을 지게 하는 방법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반려동물등록제를 의무제로 시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등록하지 않은 동물을 확인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또한 박소연 활동가는 '사육포기 동물인수제도'를 제도화하고, 번식업자에게 세금을 중과해 동물인수제도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육포기 동물인수제도는 반려인 혹은 소유인이 더 이상 키우기 힘들어진 동물의 사육을 포기할 때 지자체가 동물을 인수받는 제도다.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인수제 도입 및 추진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 연구'에 따르면, 이미 미국, 일본, 대만 등 많은 나라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하지만 사육동물을 합법적으로 유기할 수 있는 제도라는 오해로 인해 아직까지 국내에는 도입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1000여 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 기이한 생지옥 현장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여타 동물 학대 사건과는 달리 지자체장인 양평군수도 현장에 다녀갔다. 현장에 직접 취재를 온 언론사도 있었다. 과연 1000여 구의 죽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양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활동가는 한 손으로 구조한 강아지를 안고 한 손으로는 통화를 했다.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이미 많은 기사와 영상이 SNS를 통해 퍼져갔다. 악마 같은 범죄자를 엄벌하라는 댓글과 현 동물보호법의 유명무실함을 비판하는 댓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을 처벌한다고 동물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1000여 명의 개뿐이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희생된 동물의 수가 이미 숫자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반드시 이 사건을 계기로 번식장과 펫숍을 기반으로 한 동물을 사고 파는 행위가 근절되어야만 한다. 처벌 강화, 동물보호법 개정 등 실질적인 제도 변화에 관한 논의의 장이 열리길 바란다. 당장 법제화가 되지 않더라도 동물을 사고 파는 행위가 부끄러운 일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죽어가는 동물이 있다고 여기저기 외쳐야만 한다. 1000여 구의 죽음이 묻히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 덧붙이는 글
3월 5일 기준, 현장에서 생존한 4명(命)의 개는 양평군으로부터 인계받아 서울의 모 동물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미 한 명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생식기가 다 괴사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개는 관절에 문제가 있어 수술이 필요한 상태며 다른 개는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된 것에 비해 양호한 상태라고 한다. 구조된 개들은 모두 순하다. 특히 한 명은 사람을 유난히 좋아한다. 처음 보는 필자의 얼굴을 핥고 안길 정도다. 검진을 마치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개들은 입양되어야 한다. 임시보호, 입양, 검진비 및 수술비 등 다양한 형태로 관심과 후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