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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02. 2020

추운 겨울에 생각나는 믹스 커피

손을 비비며 손바닥 사이로 입김을 휘이 불어넣는다. 건설현장에서는 7시 30분에 TBM과 준비운동을 한다. 겨울에는 동트기 전 시간이면서, 건축현장이 시작하는 시간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겨울왕국 댄스를 시작한다. 그 시간에 바깥에 있어본 사람은 안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새벽보다 해뜨기 직전이 더 춥다는 걸. 무더운 여름이 미치게 그립다. 전기장판 켜놓고 이불속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심정이다.

* TBM: Tool Box Meeting, 작업 전 아침 조회.


나는 서울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그렇다고 서울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경기도 사람이 많은데 다들 멀리서부터 오다 보니 새벽 일찍부터 집을 나서야 한다. 잘못했다간 출근 시간 교통체증으로 인해 도로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 일찍 도착할 필요는 없지만 미리 와있는 노동자들이 대다수다. 가져온 차 안에서 쪽잠을 자는 이들도 있고 현장에 비치된 정수기에서 맥심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다.




나는 믹스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믹스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믹스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내게 반장님들과 소소한 대화도 나누고 친해질 기회였다. 흡연을 하면서 친해지기도 하는데 내가 흡연을 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믹스커피를 마셨다. 달달하니 맛있기도 하다. 특히나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을 쥐면 손을 따뜻하게 데워주기도 하고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모금씩 츄웁츄웁 마시다 보면 없던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현장이 아니라 일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믹스커피를 많이 마신다. 요즘은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카페에서 파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여전히 믹스커피는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특히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유는 가성비 때문이 아닐까. 가격도 저렴하고 달달하니 맛있다. 스틱 하나에 이백 원 정도 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당 충전을 할 수 있고 여름에는 얼음을 동동 띄워 시원하게 당 충전을 할 수 있으니, 부담도 없고 사계절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음료다. 게다가 간편하다. 정수기랑 종이컵만 구비해두면 언제든 마실 수 있다. 굳이 편의점까지 들르지 않아도 현장 내에서 음료 하나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내게는 믹스커피가 비타민이고 힘이야.
그거 마시면 힘이 .


장모님 말씀이다. 휴식 시간에 차나 커피를 한 잔 하는 게 문화다. 음료가 팍팍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과 위로가 되어준다. 현장에서는 믹스 커피가 그런 존재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상 겨울 아침마다 힘을 주었던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믹스커피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시거나 블랙커피를 마신다. 믹스커피에 우유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다.  만족을 위해 소들을 착취하는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위로를 주고 휴식을 준다 하더라도 다른 생명을 착취하는 데서 비롯된다면 내겐  휴식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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