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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Oct 11. 2020

이 건물,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나요?

현장관리인이 말하는 배리어 프리 이야기

5개월 차에 장애인 편의시설 시공을 전담하여 관리/감독하게 되었다. 일을 맡게 된 계기는 이전 글에 밝혔다.


지하주차장은 공사가 비교적 단순했다. 공사면적은 넓었지만 하나의 주차구역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장애인 편의시설 공사는 지하주차장 공사에 비해 까다로운 점들이 있었다. 장애인 편의시설은 하나의 화장실을 설치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변기와 휴지걸이 그리고 점자표지판 등의 치수와 규격이 정해져 있고 일일이 실측하는 꼼꼼함을 필요로 했다. 운동장처럼 넓은 지하주차장에서 줄자를 사용하는 시간보다 1평이 안 되는 장애인 화장실 안에서 줄자를 사용하는 시간이 많았다.


장애인 편의시설 세부내역

1)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확보.

도면을 보면 알겠지만 영역별로 표기해야 하는 색깔과 마크의 최소 크기와 간격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도면에는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데 장애인 마크 두께 지침을 추가로 받았었다.


2) 주차장에서 건물로 향하는 진입로 확보.

이전 편에서 짧게 언급한 내용이다. 턱이 있다면 턱을 제거하거나 의무적으로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 경사로에 대한 지침은 경사각 1/12 이하가 되어야 하고 출입문 반경을 제외한다.


3) 장애인 화장실 설치.

ⓒ 국가법령센터

화장실 변기 옆 손잡이 높이, 레버식 밸브, 출입구의 문은 미닫이문에 대한 지침이다. 높이는 휠체어 사용자들의 편의에 맞춘 것 같고, 출입구 문은 여닫이로 할 경우 휠체어 사용자들의 불편하기에 미닫이문으로 정해놓은 것 같다. 이외에도 화장실 출입구에는 안내표지판을 부착해야 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표지판을 함께 부착해야 한다. 이에 대한 높이에 대한 규정도 있다.


4) 기타: 핸드레일과 점자표지판, 바닥 점자블록

ⓒ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내 기억으론 엘리베이터와 건물 출입구, 화장실 입구 그리고 경사로 핸드레일에 점자표지판을 부착했고 지상 건물 출입구 외부 바닥에 점자블록을 설치했다. 점자블록과 점자표지판은 자재를 발주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긴 하지만, 기성품들은 기본적으로 지침을 준수하여 제작되기 때문에 시공 과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비효율적이고 번거롭지만, 꼭 해야 하는.

해당 공사를 마치고 '배리어 프리 설계'라는 용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참 의미 있고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배리어 프리: 고령자나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물리적이며 제도적인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지금은 이런 운동이 제도로 자리를 잡아 한결 나아졌다고 하지만 실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한편 '의미 있고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부끄럽기도 하다. 철저하게 타인, 방관자 입장이기 때문이다. '권장되고 칭찬받는 설계'가 아니라 '당연히 보장해야 되어야 권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장애인을 위한 건축'이란 말도 곱씹어 보면 이상한 말이기도 하다.


장애인 주차구역 마킹 및 경사로 시공 사진


건물주와 시공사 입장에서는 이런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가 비효율적이고 번거롭다. 첫째, 일반 화장실보다 장애인 화장실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다. 수익을 위한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물주에게는 비효율적이다. 둘째, 공사비와 공기가 늘어난다. 공정도 복잡해지고 늘어난다. 사용되는 자재도 늘어나기 때문에 이에 따라 공사비와 공사 기간이 늘어난다. 건물주와 현장관리인에게 비효율적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일하는 현장관리인 입장에서는 번거로웠다. 번거롭다고 느끼는 나 스스로를 보며 부끄러웠고 자괴감도 느꼈다.


번거로워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지만, 다행인 건 장애인을 대변하는 협회가 있고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법과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건물을 사용하려면 '사용승인'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용해도 된다는 일종의 'KS마크'다. 사용승인 이전에 장애인협회의 인증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협회에서는 직접 건물을 시찰하고 추가적으로 불편함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추가적으로 개선하고 사용 승인을 한다. 실제로 내가 맡았던 현장도 사전 확인을 했고 지적받았다. 이상하게 다른 업무로 실수하거나 누락했을 때보다 더 부끄러웠다. 다른 층 공사는 다른 업체에서 맡았는데 복도 폭과 경사로 지침을 지키지 않아 실내 벽을 다 허물고 다시 공사해야 했다. 건물주와 업체에게는 엄청난 재정적인 손해가 있지만, 기본이 안된 건물을 허가해줄 순 없다. 당연히 다시 공사해야 했다. 이런 제도와 과정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는 건 참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전히...

턱이 사라지고 장애인들을 위한 경사로가 생겼다. 공공화장실에는 영유아 거치대와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하철과 버스, 택시를 이용하기 힘든 사회다. 산책 한 번 하기에도 버거운 거리의 풍경을 지닌 사회다. 횡단보도에 설치된 음성안내기도 가끔 발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음성안내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신호등을 발견할 수 있는 사회다. 점자블록이 듬성듬성 빠져있는 도로도 보게 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 않은가. 용납해서는 안 되는 실수에 너무 관용을 베풀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세상이 불편하다고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분명 진보해 왔다. 오찬호 작가 책의 제목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처럼, 세상은 분명히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불편한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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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공사이기 때문에 세부내용이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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